만약 카이로네이아에서 그리스 연합군이 이겼다면?
기원전 338년 아테네와 테베의 연합군은 카이로네이아에서 마케도니아의 필리포스 2세에게 졌고, 그리스 도시국가의 독립은 사실상 끝났습니다. 연합군이 이겼다면 어떻게 되었겠습니까?
실제로 일어난 일
기원전 359년 왕이 된 필리포스 2세는 20년 만에 마케도니아를 그리스 북쪽 변두리의 작은 왕국에서 가장 강한 나라로 바꾸었습니다. 6미터 가까운 장창 사리사를 든 팔랑크스와 헤타이로이 기병, 판가이온 금광의 돈으로 칼키디케와 테살리아와 트라키아를 차례로 손에 넣었습니다. 아테네에서는 데모스테네스가 연설로 맞섰고, 기원전 346년 필로크라테스의 평화가 잠시 전쟁을 멈추었습니다.
기원전 339년 가을, 델포이 인보동맹이 암피사를 벌하라고 부른 것을 명분 삼아 필리포스가 포키스의 엘라테이아를 차지했습니다. 테베까지 이틀 길이었습니다. 데모스테네스는 『왕관에 관하여』에서 그날 아테네 민회에서 전령이 「누가 말하려는가」 하고 물었지만 아무도 일어서지 않았다고 회상합니다. 그는 테베로 가서 오랜 원수였던 두 도시의 동맹을 이끌어 냈고, 그해 겨울 동맹군은 작은 싸움 몇 번에서 이겼습니다.
기원전 338년 8월, 보이오티아 서쪽의 카이로네이아 평원에서 결전이 벌어졌습니다. 고대 기록에 따르면 필리포스는 오른쪽 날개를 일부러 물렸고, 아테네 중장보병이 대열을 풀고 뒤쫓자 생긴 틈으로 열여덟 살 알렉산드로스가 이끈 부대가 테베 쪽을 덮쳤습니다. 테베의 신성대는 그 자리에서 거의 모두 쓰러졌고, 디오도로스에 따르면 아테네인 천 명이 죽고 2천 명이 붙잡혔습니다. 필리포스는 아테네에는 너그럽게, 테베에는 가혹하게 굴었고, 이듬해 코린토스 동맹을 세워 그리스 도시들을 묶었습니다.
갈림길
카이로네이아는 한쪽이 처음부터 압도한 싸움이 아니었습니다. 디오도로스는 싸움이 오래 팽팽했다고 쓰고, 양쪽 병력도 엇비슷했던 것으로 추정됩니다. 결과를 가른 것은 마케도니아 오른쪽 날개의 후퇴에 아테네 대열이 걸려든 순간이었습니다. 아테네의 장군 스트라토클레스가 「마케도니아까지 쫓아가자」고 외쳤다는 일화가 전합니다. 경험 많은 장군 대신 카레스와 리시클레스가 아테네군을 이끈 것도 약점으로 꼽힙니다.
동맹군이 그날 이겼더라도 마케도니아가 무너졌을지는 의문입니다. 이언 워딩턴 같은 필리포스 연구자들은 그의 힘이 한 번의 싸움이 아니라 20년 동안 쌓은 군대 개혁과 금광과 테살리아·트라키아 지배에서 나왔다고 강조합니다. 반대로 아테네와 테베가 손을 잡은 것 자체가 드문 일이었고, 한 번의 승리로 그 동맹이 굳어졌다면 그리스 도시들이 스스로를 지킬 시간을 벌었으리라는 견해도 있습니다.
그랬을지도 모를 세계
왕관과 쟁기에서 다른 결과는 이렇게 그려집니다. 필리포스가 오른쪽 날개를 물렸을 때 아테네 중장보병은 대열을 풀지 않았고, 알렉산드로스의 기병은 신성대의 창벽에 막혀 말을 돌렸습니다. 해 질 녘 마케도니아군은 엘라테이아 쪽으로 물러났고, 필리포스는 테살리아를 지나 북쪽으로 돌아갔습니다. 게임에서는 테살리아와 칼키디케와 트라키아의 오드리사이가 마케도니아에서 풀려나고, 아테네와 테베의 동맹이 이어집니다.
그 뒤 게임의 바뀐 세계는 이렇게 흐릅니다. 기원전 337년 아테네가 동맹 회의를 열고, 336년 아이가이에서 필리포스가 칼에 쓰러져 알렉산드로스가 왕위에 오릅니다. 필리포스의 암살은 실제로도 336년 아이가이에서 일어났습니다. 335년 테베가 테살리아를 쥐고, 333년 젊은 왕 알렉산드로스는 아버지의 패배를 갚으려 남쪽으로 내려옵니다. 331년 테르모필라이에서 강화가 맺어지고, 330년 알렉산드로스는 그리스를 뒤로하고 홀로 아시아로 떠납니다. 324년 무렵 아테네와 테베의 동맹은 끝을 맞습니다.
이 세계에서 알렉산드로스의 정복은 사라지지 않고 미뤄지고 작아집니다. 그리스 연합군의 깃발 대신 마케도니아 혼자의 원정이 되고, 그리스 도시들은 코린토스 동맹의 일원이 아니라 독립국으로 남습니다. 데모스테네스는 실제처럼 패전국의 연설가가 아니라 승전국의 늙은 정치가로 생을 마칩니다.
시간을 건너는 파문
카이로네이아는 고전 그리스 시대의 마지막 갈림길입니다. 앞의 갈림길이 바뀐 세계에서도 마케도니아는 일어서지만, 그 필리포스는 실제와 다른 곳에서 인질 생활을 한 사람입니다. 스파르타가 레욱트라에서 이긴 세계에서는 스파르타에서, 아테네가 시라쿠사를 차지한 세계에서는 아테네에서 자랐습니다.
실제 역사에서 카이로네이아는 고전기 그리스의 끝으로 여겨집니다. 기원전 335년 알렉산드로스는 반란을 일으킨 테베를 허물었고, 323년 그가 죽은 뒤 아테네가 일으킨 라미아 전쟁도 실패해 데모스테네스는 칼라우레이아 섬에서 독을 마셨습니다. 연합군이 이긴 세계에서는 그 마지막 장면들이 일어나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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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원전 346년 데모스테네스로 시작하는 시나리오 마지막 연설을 고르세요. 펠라의 정탐, 펠로폰네소스와 에우보이아와 비잔티온을 오가는 외교, 테베 설득이 모두 연합군의 판세에 보태집니다. 기원전 339년에는 수사의 대왕이 보낸 금 상자가 찾아옵니다. 몰래 받아 동맹군 급료로 돌리면 판세가 크게 오르지만 훗날 뇌물이라는 말을 듣고, 민회 앞에서 공개적으로 받으면 조금 덜 오릅니다.
고전 그리스 시대를 다른 자리에서 시작했다면, 기원전 339년 엘라테이아의 소식이 올 때 동맹군의 대열에 서거나 무구와 식량값을 댈 수 있습니다. 필리포스 쪽이라면 왕의 대열에 서거나 테베에 보낼 선물을 나를 수 있습니다. 이 갈림길은 필리포스가 일어선 세계에서, 아테네가 살아 있고 마케도니아가 아직 그리스를 손에 넣지 않았을 때 열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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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이로네이아의 사자상은 무엇입니까?
전장에 세워진 대리석 사자상으로, 이 싸움에서 죽은 테베 사람들, 흔히 신성대의 무덤을 기리는 것으로 봅니다. 19세기에 사자상 아래 무덤을 발굴했을 때 유골 254구가 나왔습니다.
알렉산드로스는 카이로네이아에서 무엇을 했습니까?
열여덟 살의 알렉산드로스는 마케도니아군 왼쪽 날개에서 테베 쪽을 맞았고, 그의 부대가 동맹군 대열을 처음 뚫었다고 전합니다. 그가 기병을 이끌었다는 견해가 많지만 고대 기록이 자세하지 않아 논쟁이 있습니다.
데모스테네스는 카이로네이아에서 싸웠습니까?
중장보병으로 싸웠다고 전하며, 패주할 때 방패를 버렸다는 비난을 정적들에게서 받았습니다. 그래도 아테네는 전사자의 장례 연설을 그에게 맡겼습니다.
참고 자료와 더 읽을거리
데모스테네스, 『왕관에 관하여』; 아이스키네스, 『크테시폰 탄핵』; 디오도로스, 『역사총서』 16권; 폴리아이노스, 『전략론』 4권. 현대 연구: 이언 워딩턴(Ian Worthington), Philip II of Macedonia; N. G. L. 해먼드(N. G. L. Hammond), Philip of Maced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