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관과 쟁기게임 시작

만약 갈리아 제국과 팔미라가 살아남았다면?

서기 274년 · 로마 제국 · 3세기의 위기 · 고친 날

274년 아우렐리아누스는 셋으로 갈라진 제국을 다시 하나로 묶었습니다. 갈리아와 팔미라가 끝까지 독립을 지켰다면 어떻게 되었겠습니까?

물음 갈리아와 팔미라는 로마에서 떨어져 살아남을 수 있었을까?

실제로 일어난 일

260년 페르시아 왕 샤푸르 1세가 황제 발레리아누스를 사로잡았습니다. 전례 없는 굴욕이었고, 같은 무렵 게르만 약탈자들이 라인 강과 도나우 강을 건너왔습니다. 제국의 속주들은 자신을 지켜 줄 수 있는 사람이면 누구에게나 기댔습니다. 서방에서는 장군 포스투무스가 황제로 추대되어 콜로니아(쾰른), 뒤에는 트레베리(트리어)를 수도로 삼아 갈리아와 브리타니아, 한때는 히스파니아까지 다스렸습니다. 이른바 갈리아 제국입니다. 동방에서는 팔미라의 오다이나투스가 페르시아군을 무찌르고 시리아에서 유프라테스 강까지를 실제로 다스리는 세력이 되었습니다.

267년 오다이나투스가 살해된 뒤에는 그의 아내 제노비아가 아들 바발라투스의 이름으로 나라를 다스렸습니다. 그녀의 군대는 270년 이집트와 소아시아의 넓은 지역을 차지했고, 주화에는 바발라투스를 아우구스투스라 부르는 글귀가 새겨지기 시작했습니다. 이제 로마는 사실상 세 나라였습니다.

황제 아우렐리아누스(재위 270~275)는 4년 만에 이를 되돌렸습니다. 272년 임마이와 에메사에서 제노비아의 군대를 무찌르고 팔미라를 손에 넣었으며, 273년 그곳에서 일어난 두 번째 반란을 짓밟았고, 274년에는 샬롱 근처 카탈라우눔 들판에서 갈리아 황제 테트리쿠스를 꺾었습니다. 고대 저술가들은 테트리쿠스가 몰래 항복을 약속해 두었다고 전합니다. 아우렐리아누스는 로마에서 개선식을 열고 스스로를 ‘세계의 회복자’라 칭했지만, 275년 자기 장교들에게 살해되었습니다.

갈림길

갈라진 나라들은 지금 돌아보는 것만큼 허약하지 않았습니다. 갈리아 제국은 14년 동안 이어지며 라인 강 국경을 잘 지켰고, 팔미라는 노련한 군대를 거느리고 이집트의 곡물을 쥐고 있었습니다. 그들을 무너뜨린 것은 남달리 유능하고 발 빠른 한 황제였는데, 아우렐리아누스의 치세는 5년도 채우지 못했습니다. 처형될 장교 명단이 위조된 것을 계기로 일어났다고 전하는 음모가 트라키아에서 그의 목숨을 앗았습니다.

그 칼이 1~2년만 더 일찍, 테트리쿠스를 치러 가기 전에 날아들었다면 서쪽과 동쪽의 두 나라는 또 한 명의 단명한 황제가 이끄는 로마를 상대했을 것입니다. 존 드링크워터 같은 역사가들은 갈리아 황제들이 스스로를 분리주의자가 아니라 자기 지역을 지키는 로마인으로 여겼다는 점을 강조합니다. 물음은 지역 단위의 로마 국가가 항구적으로 자리 잡을 수 있었느냐입니다.

그랬을지도 모를 세계

왕관과 쟁기에서 다른 결과는 이렇게 그려집니다. 에메사에서 진 팔미라는 사막 너머에서 다시 일어섰고, 아우렐리아누스는 서쪽으로 군대를 돌리기 전에 장교들의 칼에 쓰러졌습니다. 테트리쿠스는 트레베리에서, 바발라투스는 안티오키아에서 여전히 자줏빛 옷을 입고, 제국은 셋으로 남았습니다. 그 세계에서는 아우렐리아누스가 제국을 다시 통일하는 역사 사건이 실제처럼 흘러가지 않습니다.

더 멀리 내다보면 추측의 폭이 넓어집니다. 갈리아 국가가 항구적으로 자리 잡았다면 제국이 라틴어권 서방과 그리스어권 동방으로 나뉘는 일이 100년 앞당겨졌을지도 모르고, 로마와 페르시아 사이에는 시리아와 이집트를 아우르는 제3의 세력이 섰을 것입니다. 다시 통일된 제국에서 나온 디오클레티아누스의 개혁은 같은 모습으로는 일어나지 않았을 수 있고, 기독교는 하나가 아니라 세 개의 황실을 상대했을 것입니다.

세 나라가 서로를 약하게 만들어 페르시아와 게르만족의 침입을 불러들이고, 한 세대 안에 다른 누군가에게 다시 통일되었을 가능성도 그만큼 큽니다. 로마라는 이념의 힘은 강했습니다. 포스투무스조차 갈리아가 로마에서 독립했다고 선언한 적은 없고, 다만 로마의 황제에게서 떨어져 나왔을 뿐입니다.

시간을 건너는 파문

이 결과는 다음 로마의 갈림길로 이어집니다. 갈라진 채 남은 제국은 더 약한 상태로 고트족의 위기를 맞기 때문에, 게임에서는 로마가 아드리아노플에서 이길 확률이 조금 낮아집니다. 거꾸로 180년에 마르코만니아가 속주가 되었다면 제국은 애초에 쪼개지기 어려워집니다.

다음 시대에는 갈라진 제국이 기억으로만 남습니다. 800년 시대에는 갈리아와 팔미라의 주화가 아직도 장터에서 돌고 있다는 말이 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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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 제국 시대로 시작하세요. 역사의 흐름 이야기 3세기의 위기(260년 무렵 시작)에서 갈리아 제국이나 팔미라 편에 서면 그들의 생존을, 정통 황제 편에 서면 통일의 회복을 밀어붙일 수 있습니다.

이 갈림길은 274년 당신의 세계에 갈리아나 팔미라가 별개의 나라로 있어야 일어납니다. 여기서는 판세가 여느 때보다 중요합니다. 갈리아와 팔미라가 로마에 비해 강할수록 가능성이 커지고, 두 나라 가운데 한 곳에서 땅을 다스리는 플레이어는 큰 몫을 보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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묻고 답하기

갈리아 제국은 진짜 제국이었습니까?

로마에서 떨어져 나온 국가(260~274)로, 자체 황제와 집정관, 주화를 갖고 갈리아와 브리타니아, 한때는 히스파니아까지 다스렸습니다. 그 통치자들은 스스로를 로마 황제라 불렀고, 로마 시 자체를 차지하려 한 적은 없습니다.

제노비아는 어떻게 되었습니까?

272년에 사로잡혔고, 사료에 따르면 로마에서 열린 아우렐리아누스의 개선 행렬에 끌려 나왔습니다. 여러 기록은 그녀가 그 뒤 티부르(티볼리) 근처에서 조용히 여생을 보냈다고 전합니다. 황금 사슬 같은 세부 묘사는 믿기 어려운 『히스토리아 아우구스타』에서 나왔습니다.

아우렐리아누스는 왜 살해되었습니까?

고대 저술가들에 따르면, 벌을 받을까 두려워한 그의 비서가 황제가 처형하려는 장교들의 명단을 위조했습니다. 겁에 질린 장교들은 275년 페르시아 원정을 준비하던 아우렐리아누스를 비잔티움 근처에서 죽였습니다.

참고 자료와 더 읽을거리

조시모스, 『신역사』 1권; 『히스토리아 아우구스타』. 현대 연구: 존 드링크워터(John Drinkwater), The Gallic Empire; 앨러릭 왓슨(Alaric Watson), Aurelian and the Third Century; 팻 서던(Pat Southern), Empress Zenobia.

반사실 역사는 근거를 갖춘 추측입니다. ‘실제로 일어난 일’은 실제 역사를, ‘그랬을지도 모를 세계’는 게임에 담긴 것을 포함해 개연성 있는 여러 대안 가운데 하나를 설명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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