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킹과 대관의 시대 800년
800년 성탄절, 로마의 성 베드로 대성당에서 교황 레오 3세가 프랑크 왕 카롤루스의 머리에 황제의 관을 씌웠습니다. 서로마가 무너진 지 300여 년 만에 서방에 다시 황제가 선 것입니다. 그러나 그보다 7년 전 린디스판 수도원이 불탄 뒤로, 북쪽 바다에서는 용머리 배들이 내려오고 있었습니다.
시대의 모습
카롤루스의 제국은 피레네에서 엘베 강까지 뻗었지만, 왕은 백작과 주교, 그리고 자신에게 충성을 맹세한 종사들을 통해 나라를 움직였습니다. 충성의 대가로는 은대지가 주어졌고, 이것이 훗날 봉건제의 뿌리가 됩니다. 게임에서 이 시대의 기사 자리를 종사가, 땅의 하사를 은대지 하사가 대신하고, 출전 명령이 5월 들판의 군회의에서 내려지는 이유입니다.
제국 바깥은 아직 나라라기보다 부족과 족장의 세계였습니다. 스칸디나비아에는 덴마크와 스베아의 왕, 베스트폴과 호르달란의 소왕들이 있었고, 동쪽에는 오보트리트와 벨레티 같은 슬라브 부족 연합, 초원의 하자르 카간국이 있었습니다. 브리타니아는 웨섹스, 머시아, 노섬브리아 같은 앵글로색슨 왕국으로 나뉘었고, 이베리아에서는 코르도바의 아미르국과 산악의 아스투리아스 왕국이 맞섰습니다. 가장 부유한 나라는 여전히 동쪽의 비잔티움과 바그다드의 아바스 칼리파국이었습니다.
게임에서 일어나는 큰 사건
- 베르됭 조약 카롤루스 대제가 814년에 죽고, 843년 경건왕 루도비쿠스의 세 아들이 제국을 서프랑크, 중프랑크, 동프랑크로 나누었습니다. 오늘날 프랑스와 독일의 출발점입니다.
- 바이킹의 습격과 데인로 845년 라그나르의 선단이 파리를 포위했고, 865년 데인인의 대이교도 군대가 잉글랜드에 상륙했습니다. 878년 앨프레드 대왕이 에딩턴에서 이겨 섬을 웨섹스와 데인로로 나누었고, 911년 롤로는 센 강 하구를 받아 노르망디를 세웠습니다.
- 루스와 마자르 862년 류리크가 노브고로드에 자리를 잡고, 882년 올레그가 키예프를 차지했습니다. 895년에는 마자르의 일곱 부족이 카르파티아 분지로 들어와 반세기 동안 서유럽을 약탈했고, 955년 레히펠트에서 오토 1세에게 꺾였습니다.
- 신성로마제국과 새 기독교 왕국들 962년 오토 1세가 로마에서 황제의 관을 썼습니다. 966년 폴란드의 미에슈코, 988년 키예프의 블라디미르가 세례를 받았고, 1000년에는 이슈트반이 헝가리의 왕이 되었습니다. 1054년에는 동방과 서방의 교회가 서로를 파문하며 갈라섰습니다.
- 1066년 한 해에 잉글랜드의 왕이 셋이었습니다. 해럴드가 스탬퍼드 다리에서 마지막 바이킹 왕 하랄 하르드라다를 쓰러뜨렸지만, 사흘 뒤 노르망디 공 윌리엄이 상륙했고 헤이스팅스에서 왕관의 주인이 바뀌었습니다.
이 시대를 즐기는 법
지도는 다른 어느 시대보다 잘게 쪼개져 있고 부족령과 소왕국이 많아, 작은 땅에서 시작해 새 나라를 세우기 좋은 시대입니다. 처음에는 프랑크가 서유럽의 큰 덩어리를 차지하지만 곧 상속으로 갈라지니, 그 틈을 노리세요.
주요 세력
| 세력 | 게임 속 모습 |
|---|---|
| 프랑크 왕국(카롤링 제국) | 서유럽의 거인. 카롤루스가 죽고 나면 손자들 대에 서·중·동 프랑크로 갈라진다. |
| 비잔티움 | 콘스탄티노플의 황제. 불가르와 아랍, 루스의 배들과 맞서며 로마의 이름을 잇는다. |
| 덴마크·스베아·노르웨이의 소왕들 | 용머리 배의 고향. 습격과 교역으로 은을 모으고, 곧 바다 건너 땅을 차지한다. |
| 앵글로색슨 왕국들 | 웨섹스, 머시아, 노섬브리아. 데인인의 침입 앞에서 웨섹스가 잉글랜드를 하나로 묶는다. |
| 코르도바와 아스투리아스 | 알안달루스의 이슬람 국가와 북쪽 산악의 기독교 왕국. 코르도바는 칼리파국이 되었다가 타이파들로 쪼개진다. |
| 하자르·불가르와 슬라브 부족들 | 동쪽 초원과 숲의 세력. 그 사이로 루스와 마자르가 새 나라를 세운다. |
그 시대 사람들의 삶
대부분의 사람은 숲을 개간한 작은 마을에서 농노나 자유농으로 살았습니다. 영주의 땅에서 부역을 하고 교회에 십일조를 바쳤으며, 글을 아는 사람은 거의 수도사뿐이었습니다. 카롤루스의 궁정 학교와 수도원 필사실에서는 새로 퍼진 둥근 글씨체로 고전과 성경을 베꼈고, 오늘날 전해지는 라틴 고전의 상당수가 이때 살아남았습니다. 게임의 궁정 학교, 몸값 붙은 복음서 같은 사건이 이 세계를 담고 있습니다.
북방에서는 자유민이 팅이라는 집회에 모여 법을 정하고 분쟁을 가렸고, 피의 값을 치르거나 혼인으로 원한을 끝냈습니다. 바이킹은 약탈자이면서 상인이기도 해서, 헤데비와 비르카의 장터에는 아랍 은화와 프리슬란트 옷감, 모피와 노예가 오갔습니다. 스칼드의 조롱시 한 편이 한 사람의 명예를 무너뜨릴 수 있는 사회였고, 풀려난 노예가 자유의 맥주를 돌리며 새 삶을 시작하기도 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