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약 배교자 율리아누스가 페르시아에서 돌아왔다면?
마지막 이교도 황제는 363년 크테시폰에서 물러나던 길에 죽었습니다. 그가 페르시아 전쟁에서 이겼다면 어떻게 되었겠습니까?
실제로 일어난 일
콘스탄티누스의 조카 율리아누스는 361년 단독 황제가 되자 옛 신들을 되살리는 일에 나서, 신전을 다시 열고 교회의 특권을 제한했습니다. 363년 3월 그는 후기 고대에서 가장 큰 규모에 속하는, 6만 5천 명에 이르렀을지도 모르는 군대를 이끌고 샤푸르 2세의 사산 제국을 침공했습니다. 군대는 강 함대와 함께 유프라테스 강을 따라 내려갔습니다.
처음에는 침공이 순조로웠습니다. 율리아누스의 군대는 티그리스 강가의 페르시아 수도 크테시폰에 이르러 성벽 밖에서 페르시아군을 물리쳤습니다. 그러나 그는 포위를 시도하지 않았습니다. 대신 목격자 암미아누스 마르켈리누스도 설명하기 어려워한 이유로 함대 대부분을 불태우고 티그리스 강을 따라 북쪽으로 방향을 틀었습니다. 두 번째 로마군과 합류하고, 어쩌면 샤푸르를 결전으로 끌어내려는 생각이었습니다.
여름 더위 속에서 페르시아 기병에게 시달리며 군대는 큰 고통을 겪었습니다. 363년 6월 26일, 흉갑도 걸치지 않은 채 소규모 접전에 뛰어든 율리아누스는 창에 찔려 그날 밤 숨을 거두었습니다. 후계자 요비아누스는 어떻게든 군대를 데리고 돌아가려고 굴욕적인 강화에 동의했습니다. 로마는 니시비스와 싱가라, 티그리스 강 너머의 다섯 지역을 내주고 동맹국 아르메니아를 저버렸습니다.
갈림길
두 가지 결정이 눈에 띕니다. 크테시폰을 포위하지 않은 것과 함대를 불태운 것입니다. 역사가들은 지금도 이를 두고 논쟁합니다. 페르시아 야전군이 가까이 있는 상황에서 튼튼한 성벽을 상대로 한 포위는 실패했을 수도 있지만, 배가 없어지자 군대는 보급과 퇴로를 함께 잃었습니다. 율리아누스의 죽음 자체는 순전히 우연이었습니다. 접전 중 한순간의 방심이었습니다.
누가 창을 던졌는지는 당시에도 논란거리였습니다. 율리아누스의 이교도 벗 리바니오스는 로마군 대열 안의 기독교도를 의심했고, 후대의 기독교 저술가들은 신의 징벌이라 했으며, 대부분의 고대 기록은 적군 병사, 어쩌면 페르시아를 위해 싸우던 아랍인 보조병을 가리킵니다. 율리아누스의 진영에는 로마로 망명한 샤푸르의 형제인 페르시아 왕자 호르미즈드가 있었고, 일부 역사가는 율리아누스가 그를 페르시아 왕좌에 앉히려 했다고 봅니다.
그랬을지도 모를 세계
왕관과 쟁기에서 다른 결과는 이렇게 그려집니다. 율리아누스는 함대를 불태우지 않았고, 군대는 강을 따라 물러났다가 이듬해 다시 왔습니다. 샤푸르는 산지로 달아났고, 로마 진영에서 자란 호르미즈드가 크테시폰의 왕좌에 올랐습니다. 제국 곳곳에서 옛 신들의 신전 문이 다시 열렸습니다. 그 세계에서는 테오도시우스 황제 때의 교회 정비가 실제 역사처럼 일어나지 않습니다.
게임 밖에서 보면, 크테시폰에 로마의 꼭두각시 왕이 섰다는 것은 한 세기 동안 교착 상태였던 로마와 페르시아의 관계에서 혁명적인 일이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오래갔을지는 의문입니다. 페르시아 귀족들은 로마가 세운 왕을 오래 받아들인 적이 거의 없었고, 로마는 이전에도 메소포타미아를 지키는 데 실패한 적이 있습니다.
종교 문제는 더 어렵습니다. 율리아누스는 자식이 없었고 겨우 서른한 살이었으며, 이교 부흥은 그 자신의 생명과 열정에 달려 있었습니다. 대부분의 역사가는 기독교가 도시와 제국 행정에 내린 뿌리가 이미 한 사람의 치세로 뒤집기에는 너무 깊었다고 봅니다. 다만 율리아누스가 오래 살았다면 교회의 성장을 늦추고 후기 로마 종교의 성격을 바꿔 놓았을 수는 있습니다.
시간을 건너는 파문
게임에서는 율리아누스가 살아 있으면 고트족의 위기를 앞둔 제국이 더 튼튼해져서 로마가 아드리아노플에서 이길 확률이 높아집니다.
바이킹과 대관의 시대로 이어지면, 페르시아가 패배한 기억 때문에 800년의 아바스 칼리프국은 군대가 조금 작은 채로 시작합니다.
- 영향을 받는 갈림길 만약 로마가 아드리아노플에서 이겼다면?
- 다음 시대로 이어지는 것 바이킹과 대관의 시대
이 갈림길을 플레이하기
로마 제국 시대로 시작해 360년대까지 살아남으세요. 전용 시나리오는 없습니다. 이 갈림길은 로마와 페르시아가 모두 있어야 일어납니다. 로마 편에서 페르시아와 싸우거나 율리아누스 쪽 영주를 섬기면 다른 결과가 나올 확률이 오르고, 샤푸르 2세를 섬기면 역사대로 흘러갑니다.
게임에서 가장 고집 센 갈림길 가운데 하나입니다. 로마의 실제 결과에 무게가 크게 실려 있으니, 율리아누스 쪽에서 큰 나라를 다스리지 않는 한 역사가 그대로 흘러갈 것이라 생각하세요.
묻고 답하기
율리아누스는 왜 배교자라고 불립니까?
기독교도로 자랐지만 황제가 된 뒤 공공연히 그리스와 로마의 전통 신들에게 돌아갔기 때문입니다. 기독교 저술가들은 그를 신앙을 버린 자, 곧 배교자라 불렀습니다.
율리아누스를 죽인 사람은 누구입니까?
아무도 모릅니다. 암미아누스는 접전 중에 어디서 날아왔는지 모를 창이었다고 씁니다. 리바니오스는 로마군의 기독교도 병사를 의심했고, 다른 기록들은 페르시아인이나 페르시아를 위해 싸운 아랍인을 지목합니다.
율리아누스가 죽은 뒤 로마는 무엇을 잃었습니까?
363년의 강화에서 요비아누스는 니시비스와 싱가라, 티그리스 강 동쪽의 다섯 지역을 페르시아에 넘기고, 아르메니아를 보호한다는 로마의 주장을 포기했습니다.
참고 자료와 더 읽을거리
암미아누스 마르켈리누스, 『역사』 23~25권(목격자의 기록); 리바니오스, 『연설』. 현대 연구: 글렌 바워삭(Glen Bowersock), Julian the Apostate; 에이드리언 머독(Adrian Murdoch), The Last Paga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