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약 앨프레드 대왕이 에딩턴에서 졌다면?
878년 앨프레드는 서머싯의 늪지에서 나와 데인인을 무찔렀습니다. 웨섹스마저 무너졌다면 어떻게 되었겠습니까?
실제로 일어난 일
865년 이교도 대군세가 이스트앵글리아에 상륙했습니다. 몇 해 안에 그들은 요크를 차지하고 이스트앵글리아의 에드먼드 왕을 죽였으며 머시아의 상당 부분을 휩쓸었습니다. 홀로 버틴 것은 웨섹스뿐이었습니다. 앨프레드는 전투가 끊이지 않던 871년에 왕이 되었고, 데인인에게 돈을 주어 물러나게 했습니다.
878년 1월 데인인의 왕 구스럼은 한겨울의 기습으로 앨프레드의 영지 치펀햄을 덮쳤습니다. 『앵글로색슨 연대기』에 따르면 많은 웨스트색슨인이 항복하거나 바다 건너로 달아났고, 앨프레드는 소수의 무리와 함께 서머싯의 애셀니 늪지로 물러났습니다(케이크를 태웠다는 훗날의 이야기가 이때의 일입니다). 그는 그곳의 요새에서 봄 내내 데인인을 습격했습니다.
5월에 그는 서머싯과 윌트셔, 햄프셔 일부의 사람들을 에그버트의 돌로 불러 모아, 흔히 윌트셔의 에딩턴으로 보는 에산둔에서 구스럼을 무찔렀습니다. 2주간의 포위 끝에 데인인은 항복했고, 구스럼은 앨프레드를 대부로 삼아 세례를 받은 뒤 이스트앵글리아로 물러났습니다. 뒤이은 조약으로 잉글랜드는 앨프레드의 땅과 데인인의 법이 다스리는 땅, 곧 데인로로 나뉘었습니다.
갈림길
878년 겨울이 가장 어두운 때였습니다. 앨프레드의 왕국은 사실상 무너졌고, 귀족 일부는 이미 적과 타협한 상태였습니다. 저항의 불씨를 살린 것은 두 가지였습니다. 늪지에서 살아남은 앨프레드, 그리고 데번에서 또 다른 데인인 무리가 지휘관을 잃고 패배한 일입니다. 에딩턴 전투 자체도 결과가 정해져 있지 않은 치열한 방패벽 싸움이었습니다.
주요 사료인 『앵글로색슨 연대기』와 아서의 『앨프레드 왕의 생애』는 앨프레드의 궁정이나 그 가까이에서 만들어졌으므로, 재기의 극적인 면을 부풀렸을 수도 있습니다. 그렇더라도 878년의 웨섹스가 노섬브리아, 이스트앵글리아, 머시아와 같은 운명에 가까이 갔다는 데에는 역사가들의 의견이 일치합니다.
그랬을지도 모를 세계
왕관과 쟁기에서 다른 결과는 이렇게 그려집니다. 치펀햄을 잃은 앨프레드는 늪에서 다시 나오지 못했고, 에딩턴에 모인 마지막 퓌르드가 흩어지자 웨섹스의 테인들이 차례로 구스럼에게 무릎을 꿇었습니다. 섬의 왕국 넷이 모두 데인인의 것이 되었습니다. 그러면 게임은 웨스트색슨의 잉글랜드에서 비롯되는 역사 사건, 곧 잉글랜드 통일, 크누트의 정복, 참회왕 에드워드, 헤이스팅스를 없앱니다.
게임 밖에서 보면, 데인인의 잉글랜드는 스칸디나비아와 훨씬 더 가깝게 묶였을 것입니다. 데인로에서는 이미 영어가 노르드어 낱말을 많이 받아들였는데, 섬 전체에서라면 그 영향은 더 컸을 것입니다. 하나의 잉글랜드 왕국의 바탕을 놓은 웨스트색슨의 학문 진흥과 법전, 요새 도시 버러는 아예 생겨나지 않았을지도 모릅니다.
그것이 꼭 오래가는 스칸디나비아 국가였으리라는 법은 없습니다. 데인인 통치자들은 노르망디에서 그랬듯 빠르게 개종하고 현지인과 혼인하며 그곳의 방식을 받아들였습니다. 구스럼의 후손이 다스리는 잉글랜드는 11세기에 크누트가 다스린 나라와 비슷한 기독교 앵글로-데인 왕국이 되었을지도 모릅니다.
시간을 건너는 파문
웨섹스가 무너지면 게임에서는 1066년과 헤이스팅스 전투가 아예 일어나지 않습니다.
중세(1200년)로 이어 가면 잉글랜드는 구스럼의 후손 왕조가 다스리고 덴마크와 사이가 좋습니다. 노르만 정복이 없었으므로 잉글랜드 왕은 해협 건너에 땅이 없습니다. 노르망디는 프랑스의 봉신 공국이고, 나머지 앙주 왕가의 땅은 프랑스에 속합니다.
- 영향을 받는 갈림길 만약 해럴드가 헤이스팅스 전투에서 이겼다면?
- 다음 시대로 이어지는 것 중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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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킹과 대관의 시대로 시작하거나, 왕이 숨어 있는 878년에 시작하는 시나리오 애셀니의 늪을 고르세요. 역사의 흐름 이야기 앨프레드와 데인로에서 웨섹스나 이교도 대군세 가운데 한쪽에 설 수 있습니다.
역사를 바꾸려면 데인인 편에서 싸우고, 지키려면 앨프레드 곁에 서세요. 여기서는 데인 대군과 잉글랜드 왕국들 사이의 판세, 그리고 이야기 속 당신의 행적이 함께 영향을 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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묻고 답하기
에딩턴 전투는 어디에서 벌어졌습니까?
에산둔은 흔히 윌트셔의 에딩턴으로 봅니다. 전투는 878년 5월에 벌어졌습니다.
앨프레드는 정말 케이크를 태웠습니까?
이 이야기는 앨프레드가 죽고 100년쯤 뒤에 쓰인 사료에 처음 나옵니다. 전설이지만, 878년 그가 실제로 애셀니로 물러났던 일을 반영하고 있습니다.
데인로는 무엇입니까?
데인인이 정착해 데인인의 관습으로 다스린 잉글랜드 북부와 동부 지역으로, 앨프레드와 구스럼의 조약에서 인정되었습니다.
참고 자료와 더 읽을거리
『앵글로색슨 연대기』; 아서, 『앨프레드 왕의 생애』. 현대 연구: 리처드 에이벨스(Richard Abels), Alfred the Great; 프랭크 스텐턴(Frank Stenton), Anglo-Saxon England; 데이비드 스터디(David Sturdy), Alfred the Grea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