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 로
존 로(1671년~1729년)는 스코틀랜드 출신의 경제학자이자 금융가로, 1716년 파리에 지폐를 발행하는 은행을 세우고 미시시피 회사(뒤의 인도 회사)를 키워 1720년 프랑스의 재무총감이 되었습니다. 회사 주식과 지폐를 묶어 국가 부채를 줄이려던 그의 「체제」는 1719~1720년 주가가 치솟았다 무너진 「미시시피 거품」으로 끝났고, 그는 프랑스를 떠나 1729년 베네치아에서 죽었습니다. 지폐와 신용에 관한 생각으로 근대 금융의 선구자로도 평가됩니다.
| 생몰 | 1671년 – 1729년 |
|---|---|
| 활동한 곳 | 에든버러 · 런던 · 파리 · 베네치아 |
| 알려진 일 | 미시시피 거품, 프랑스 왕립은행과 지폐 |
| 게임 시작 | 1719년 · 48세 · 파리의 은행가(평민) — 캥캉푸아 거리 |
생애 요약
- 1671년 에든버러에서 금세공인이자 은행가 윌리엄 로의 아들로 태어납니다.
- 1683년 아버지가 파리에서 결석 수술을 받은 뒤 죽습니다.
- 1694년 런던에서 결투로 에드워드 윌슨을 죽여 사형 선고를 받지만, 감옥을 빠져나와 대륙으로 달아납니다.
- 1705년 『화폐와 무역에 관한 고찰』을 펴내 토지를 담보로 한 지폐를 스코틀랜드 의회에 제안하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습니다.
- 1716년 섭정 오를레앙 공의 허가로 파리에 지폐를 발행하는 일반은행을 세우고, 이 은행은 1718년 왕립은행이 됩니다.
- 1717년 루이지애나 무역권을 가진 서인도 회사(미시시피 회사)를 세우고, 이듬해 회사가 누벨오를레앙(오늘의 뉴올리언스)을 건설합니다.
- 1719년 다른 무역 회사들을 합쳐 인도 회사로 키우고, 캥캉푸아 거리의 열풍 속에 500리브르였던 주가가 1만 리브르 가까이 치솟습니다.
- 1720년 1월 재무총감이 되지만, 5월 21일 주식과 지폐의 값을 내린 칙령 뒤 체제가 무너지고 12월 프랑스를 떠납니다.
- 1721년 잉글랜드로 돌아가 옛 결투 사건에 대한 사면을 받습니다.
- 1729년 3월 21일 베네치아에서 폐렴으로 죽습니다.
가족
게임에서 이 인물로 시작할 때 함께 나오는 가족입니다. 연도는 역사 기록을 따랐고, 전하지 않는 것은 ?로 두었습니다.
| 관계 | 이름 | 생몰년 | 비고 |
|---|---|---|---|
| 아버지 | 윌리엄 로 | ? – 1683년 | 에든버러의 금세공인·은행가 |
| 어머니 | 진 캠벨 | 생몰년 미상 | |
| 동생 | 윌리엄 | 생몰년 미상 | 형의 사업을 도움 |
| 반려 | 캐서린 놀스 | ? – 1747년 | 귀족 놀스 집안 출신. 정식으로 혼인하지는 않음 |
| 아들 | 존 | 1704년경 – 1734년 | |
| 딸 | 메리 캐서린 | 1710년경 – 1790년 |
게임에서는
1719년 가을, 파리에서 마흔여덟 살의 은행가로 시작합니다. 캥캉푸아 거리에서는 500리브르짜리 주식이 벌써 5천 리브르에 팔리고, 당신 마차가 들어서면 사람들이 모자를 벗습니다. 땅도 작위도 없는 평민이지만 왕립은행과 인도 회사, 섭정 오를레앙 공의 신임이 있고, 캐서린 놀스와 아들 존, 딸 메리 캐서린, 동생 윌리엄이 곁에 있습니다.
갈림길은 「로의 체제가 버텼다면」입니다. 첫 사건 「캥캉푸아 거리의 창」에서 「더 오를 것이오」라고 하면 명성을 얻지만 체제가 무너질 판세가 오르고, 「종이 절반은 금으로 바꿔 두시오」라고 귀띔하면 버틸 판세가 오릅니다. 1720년 재무총감으로서 내리는 결정까지 이어진 끝에, 체제가 무너지면 5월 21일과 호른 백작의 칼, 브뤼셀의 가면, 킹스 벤치의 사면을 지나 1729년 베네치아의 겨울까지 실제 역사가, 버티면 누벨오를레앙과 평화의 장부로 이어지는 다른 줄기가 결말까지 갑니다.
같은 해의 장면은 한 장면이 끝나면 다음 장면이 곧바로 오고, 앞 장면의 선택이 그대로 남습니다. 결말은 1729년 베네치아의 겨울에 걸린 폐렴이지만, 버텨 낼 수도 있습니다.
- 시나리오 안내 캥캉푸아 거리
- 시대 안내 태양왕과 바로크의 시대
- 관련 갈림길 만약 1720년 존 로의 체제가 버텼다면?
자주 묻는 질문
미시시피 거품이란 무엇인가요?
1719~1720년 프랑스에서 존 로의 미시시피 회사(인도 회사) 주가가 몇 달 사이 스무 배 가까이 치솟았다가 무너진 투기 사건입니다. 사람들은 국채와 지폐로 주식을 샀고, 1720년 지폐를 금화로 바꾸려는 사람이 몰리면서 주가와 지폐 가치가 함께 폭락했습니다. 같은 해 런던의 남해 거품과 함께 근대 초기의 대표적인 금융 거품으로 꼽힙니다.
존 로의 「체제」는 어떤 생각이었나요?
금화와 은화 대신 국가가 보증하는 지폐를 넉넉히 돌려 상업을 살리고, 국채를 회사 주식으로 바꾸어 왕실의 빚을 줄이려는 구상이었습니다. 은행과 무역 회사, 조세 징수권을 한 손에 모은 이 구상은 지폐를 지나치게 찍으면서 무너졌지만, 신용 화폐와 중앙은행의 역할을 일찍 내다본 생각으로 평가받기도 합니다.
존 로와 뉴올리언스는 어떤 관계인가요?
루이지애나 무역을 독점한 그의 미시시피 회사가 1718년 미시시피 강 하구 근처에 누벨오를레앙을 세웠습니다. 도시 이름은 섭정 오를레앙 공 필리프에게서 왔고, 회사는 이주민을 모으려고 루이지애나를 크게 선전했습니다.
참고
존 로 『화폐와 무역에 관한 고찰』(1705), 생시몽 공작의 회고록, 일반 금융사·프랑스 섭정기 개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