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 처칠(말버러 공작)
존 처칠, 초대 말버러 공작(1650년~1722년)은 영국의 장군이자 정치가입니다. 1688년 명예혁명 때 제임스 2세의 장군이면서 오라녜 공 빌럼 편으로 넘어갔고, 앤 여왕 아래 대장군이 되어 스페인 왕위 계승 전쟁에서 1704년 블렌하임, 1706년 라미이, 1708년 오우데나르더, 1709년 말플라케에서 루이 14세의 군대와 싸웠습니다. 영국 총리 윈스턴 처칠의 조상이며, 그의 공을 기려 지은 블렌하임 궁전으로도 알려져 있습니다.
| 생몰 | 1650년 – 1722년 |
|---|---|
| 활동한 곳 | 잉글랜드 · 네덜란드 · 바이에른(블렌하임) · 스페인령 네덜란드 |
| 알려진 일 | 블렌하임 전투, 초대 말버러 공작, 윈스턴 처칠의 조상 |
| 게임 시작 | 1688년 · 38세 · 제임스 2세 군의 중장(기사 신분) — 토베이의 바람 |
생애 요약
- 1650년 5월 26일 데번의 애시 하우스에서 왕당파 기사 윈스턴 처칠의 아들로 태어납니다.
- 1678년 요크 공작부인의 시녀이자 앤 공주의 벗인 사라 제닝스와 혼인합니다.
- 1685년 세지무어 전투에서 몬머스 공작의 반란군을 무찌르는 데 앞장섭니다.
- 1688년 11월 오라녜 공 빌럼이 토베이에 상륙하자 솔즈베리의 왕의 진영을 떠나 빌럼 편으로 넘어갑니다.
- 1689년 윌리엄 3세 아래 말버러 백작이 됩니다. 1692년에는 재커바이트와 내통했다는 의심으로 한때 런던탑에 갇힙니다.
- 1702년 앤 여왕이 즉위하자 대장군이 되고, 말버러 공작에 오릅니다.
- 1704년 8월 13일 사보이 공자 외젠과 함께 블렌하임에서 프랑스·바이에른군을 무찌릅니다. 이어 1706년 라미이, 1708년 오우데나르더, 1709년 말플라케에서 싸웁니다.
- 1711년 아내 사라와 앤 여왕의 사이가 틀어지고 토리 정부가 들어선 뒤, 연말에 모든 직위에서 해임됩니다.
- 1714년 조지 1세가 즉위하자 대장군 자리에 돌아옵니다.
- 1722년 6월 16일 윈저 로지에서 죽습니다.
가족
게임에서 이 인물로 시작할 때 함께 나오는 가족입니다. 연도는 역사 기록을 따랐고, 전하지 않는 것은 ?로 두었습니다.
| 관계 | 이름 | 생몰년 | 비고 |
|---|---|---|---|
| 아버지 | 윈스턴 처칠 경 | 1620년 – 1688년 | 왕당파 기사, 하원 의원 |
| 어머니 | 엘리자베스 드레이크 | 1622년경 – 1698년 | |
| 누나 | 아라벨라 | 1648년 – 1730년 | 요크 공(제임스 2세)의 정부, 버윅 공작의 어머니 |
| 동생 | 조지 | 1654년 – 1710년 | 해군 제독 |
| 동생 | 찰스 | 1656년 – 1714년 | 육군 장군 |
| 아내 | 사라 제닝스 | 1660년 – 1744년 | 앤 여왕의 가장 가까운 벗, 말버러 공작부인 |
| 딸 | 헨리에타 | 1681년 – 1733년 | 아버지의 작위를 이은 2대 말버러 여공작 |
| 딸 | 앤 | 1684년 – 1716년 | 선덜랜드 백작 찰스 스펜서와 혼인. 스펜서-처칠 가문의 조상 |
| 아들 | 존 | 1686년 – 1703년 | 1703년 케임브리지에서 천연두로 죽음 |
| 딸 | 엘리자베스 | 1687년 – 1714년 | 브리지워터 백작과 혼인 |
게임에서는
1688년 11월, 잉글랜드 서부에서 제임스 2세 군의 서른여덟 살 중장으로 시작합니다. 왕의 사위 오라녜 공 빌럼이 토베이에 상륙했고, 오늘 밤 그래프턴 공작이 말을 준비해 두었습니다. 땅은 없지만 군대와 이름이 있고, 아내 사라는 앤 공주의 가장 가까운 벗입니다. 딸 헨리에타와 앤, 엘리자베스, 아들 존이 있습니다.
갈림길 「명예혁명」은 첫 해에 판정되므로 시작하자마자 「솔즈베리의 밤」이 옵니다. 빌럼의 진영으로 가면 콕핏 궁의 뒷계단, 말버러 백작, 꽃병 속의 편지, 여왕의 대장군, 블렌하임과 라미이와 말플라케, 황금 열쇠와 해임, 도버의 8월을 지나 1722년 윈저 로지까지 실제 역사가, 왕 곁에 남아 제임스 2세가 왕좌를 지키면 헤이그의 망명 연대와 조카 버윅으로 이어지는 다른 줄기가 결말까지 갑니다.
1712년에는 다음 갈림길 「두 왕관의 부르봉」의 전야도 처칠의 장면으로 옵니다. 아내 사라와 앤 여왕의 우정은 이 삶의 큰 힘이자 약점이고, 1703년 「케임브리지에서 온 편지」는 외아들 존의 일입니다.
- 시나리오 안내 토베이의 바람
- 시대 안내 태양왕과 바로크의 시대
- 관련 갈림길 만약 명예혁명이 실패했다면?, 만약 프랑스와 스페인이 부르봉의 한 왕관 아래 묶였다면?
자주 묻는 질문
존 처칠과 윈스턴 처칠은 어떤 관계인가요?
윈스턴 처칠의 직계 조상입니다. 딸 앤과 선덜랜드 백작 찰스 스펜서의 후손이 훗날 말버러 공작 작위를 이어 스펜서-처칠이라는 성을 썼고, 윈스턴 처칠은 7대 말버러 공작의 손자로 1874년 블렌하임 궁전에서 태어났습니다. 윈스턴은 조상의 전기 『말버러: 그의 생애와 시대』를 쓰기도 했습니다.
블렌하임 전투는 어떤 전투였나요?
1704년 8월 13일 바이에른의 도나우 강가 블린트하임(영어로 블렌하임) 근처에서, 말버러와 사보이 공자 외젠의 연합군이 프랑스·바이에른군을 크게 무찌른 전투입니다. 이 승리로 빈에 대한 위협이 사라졌고, 앤 여왕은 그에게 우드스톡의 땅을 주어 블렌하임 궁전을 짓게 했습니다.
처칠은 왜 명예혁명 때 제임스 2세를 떠났나요?
신교도로서 제임스 2세의 가톨릭 정책에 반대했고, 아내 사라를 통해 신교도인 앤 공주와 가까웠기 때문으로 봅니다. 왕에게 출세를 빚진 그의 이탈은 당시에도 배신이라는 비난을 받았고, 지금도 평가가 엇갈립니다.
참고
윈스턴 처칠 『말버러: 그의 생애와 시대』, 일반 영국사·스페인 왕위 계승 전쟁 개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