얀 3세 소비에스키
얀 3세 소비에스키(1629년~1696년)는 1674년부터 1696년까지 폴란드-리투아니아 연방의 왕이었습니다. 1673년 호친에서 오스만군을 무찔러 이름을 얻고 왕으로 선출되었으며, 1683년 9월 12일 빈 전투에서 날개 달린 경기병(후사리아)을 이끌고 칼렌베르크 언덕에서 돌격해 오스만의 빈 포위를 깨뜨렸습니다. 이 승리로 「빈의 구원자」, 오스만 사람들에게는 「레히스탄의 사자」로 불렸습니다.
| 생몰 | 1629년 – 1696년 |
|---|---|
| 활동한 곳 | 폴란드-리투아니아(크라쿠프, 바르샤바, 빌라누프) · 빈 |
| 알려진 일 | 1683년 빈 전투, 날개 달린 경기병의 돌격 |
| 게임 시작 | 1683년 · 54세 · 폴란드 왕이자 리투아니아 대공(군주) — 날개 달린 경기병 |
생애 요약
- 1629년 8월 17일 루테니아의 올레스코에서 크라쿠프 성주 야쿠프 소비에스키의 아들로 태어납니다.
- 1652년 형 마레크가 바토흐 전투 뒤 타타르에게 포로로 잡혀 죽습니다.
- 1665년 프랑스 출신의 마리 카지미르와 혼인하고, 같은 해 왕실 대원수가 됩니다.
- 1668년 왕국 군대의 최고 지휘관인 대헤트만이 됩니다.
- 1673년 11월 호친에서 오스만군을 크게 무찌릅니다.
- 1674년 국왕 선거에서 왕으로 뽑히고, 1676년 대관합니다.
- 1683년 9월 12일 빈 전투에서 연합군을 이끌고 칼렌베르크 언덕에서 내려와 날개 달린 경기병의 대돌격으로 포위를 깨뜨립니다.
- 1686년 러시아와 「영원한 평화」를 맺어 신성동맹에 끌어들이고, 몰다비아 원정에 나섭니다.
- 1696년 6월 17일 바르샤바 근교 빌라누프 궁에서 죽습니다. 이듬해 선거에서 아들 야쿠프는 왕위를 잇지 못합니다.
가족
게임에서 이 인물로 시작할 때 함께 나오는 가족입니다. 연도는 역사 기록을 따랐고, 전하지 않는 것은 ?로 두었습니다.
| 관계 | 이름 | 생몰년 | 비고 |
|---|---|---|---|
| 아버지 | 야쿠프 소비에스키 | 1590년경 – 1646년 | 크라쿠프 성주 |
| 어머니 | 조피아 테오필라 다니워비치 | 1607년 – 1661년 | 헤트만 주키에프스키의 손녀 |
| 형 | 마레크 | 1628년 – 1652년 | 1652년 바토흐 전투 뒤 포로로 죽음 |
| 아내 | 마리 카지미르 | 1641년 – 1716년 | 프랑스 출신. 편지 속의 「마리센카」 |
| 아들 | 야쿠프 | 1667년 – 1737년 | 왕위 선거에서 아버지를 잇지 못함 |
| 딸 | 테레사 쿠네군다 | 1676년 – 1730년 | 바이에른 선제후 막시밀리안 2세 에마누엘과 혼인 |
| 아들 | 알렉산데르 | 1677년 – 1714년 | |
| 아들 | 콘스탄티 | 1680년 – 1726년 |
게임에서는
1683년 여름, 크라쿠프에서 쉰네 살의 폴란드 왕으로 시작합니다. 대재상 카라 무스타파의 대군이 빈을 에워쌌고 황제는 도시를 버리고 떠났습니다. 처음부터 폴란드-리투아니아를 다스리고 후사리아를 거느리며, 아내 마리센카와 열여섯 살 맏아들 야쿠프, 알렉산데르와 콘스탄티, 딸 테레사 쿠네군다가 있습니다.
갈림길 「빈 포위」는 첫 해에 판정되므로, 시작하자마자 「칼렌베르크로 가는 길」에서 리투아니아 군을 기다릴지 먼저 달려갈지 고릅니다. 빈이 버티면 칼렌베르크의 돌격, 대재상의 천막, 신성동맹, 영원한 평화, 야시의 여름, 선출되는 왕관을 지나 1696년 빌라누프의 6월까지 실제 역사가, 빈이 함락되면 칼렌베르크의 초승달과 베르사유의 제안으로 이어지는 다른 줄기가 결말까지 갑니다.
폴란드 왕관은 물려줄 수 없고 선거로 정해집니다. 1688년 「선출되는 왕관」과 1695년 「식탁의 다툼」에서 야쿠프와 마리센카 사이의 일이 다음 선거를 흔들고, 1689년 「셀라동과 아스트레」에서는 아내와 편지를 주고받습니다.
- 시나리오 안내 날개 달린 경기병
- 시대 안내 태양왕과 바로크의 시대
- 관련 갈림길 만약 1683년 오스만이 빈을 함락했다면?
자주 묻는 질문
빈 전투는 언제, 어떻게 벌어졌나요?
1683년 9월 12일, 두 달 가까이 포위된 빈을 구하러 온 폴란드·신성 로마 제국 연합군이 빈 북서쪽 칼렌베르크 언덕에서 내려와 오스만군을 공격했습니다. 해 질 무렵 소비에스키가 이끈 날개 달린 경기병의 대돌격이 오스만 진영을 무너뜨렸고, 이 패배 뒤 오스만 제국은 중부 유럽에서 물러나기 시작했습니다.
「날개 달린 경기병(후사리아)」이란 무엇인가요?
16세기부터 18세기 초까지 폴란드-리투아니아에서 활약한 중기병으로, 갑옷 등에 깃털을 단 날개 장식을 달고 긴 창으로 돌격했습니다. 키르홀름(1605)과 클루시노(1610), 빈(1683)에서의 돌격으로 이름이 높습니다.
「우리는 왔노라, 보았노라, 신께서 이기셨노라」는 누구의 말인가요?
빈 전투에서 이긴 뒤 소비에스키가 교황 인노켄티우스 11세에게 보냈다고 전하는 말입니다. 카이사르의 「왔노라, 보았노라, 이겼노라」를 바꾸어 승리를 신께 돌린 표현입니다.
참고
얀 3세 소비에스키가 마리 카지미르에게 보낸 편지들, 일반 폴란드사·오스만사 개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