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드리아누스
하드리아누스(서기 76년~138년)는 117년부터 138년까지 다스린 로마 제국의 황제로, 이른바 오현제 가운데 셋째입니다. 선대 트라야누스의 정복을 멈추고 국경을 다지는 쪽을 택해 브리타니아를 가로지르는 하드리아누스 방벽을 쌓게 했고, 재위 내내 속주를 돌았습니다. 로마의 판테온 재건과 티부르의 별장, 연인 안티노우스로도 알려져 있습니다.
| 생몰 | 서기 76년 – 서기 138년 |
|---|---|
| 활동한 곳 | 로마 · 브리타니아 · 그리스 · 이집트 · 유대 |
| 알려진 일 | 하드리아누스 방벽, 오현제의 셋째 황제 |
| 게임 시작 | 122년 · 46세 · 로마 황제(군주) — 방벽의 황제 |
생애 요약
- 서기 76년 1월 24일 히스파니아 이탈리카 출신 집안에서 태어납니다. 태어난 곳은 로마라고도 이탈리카라고도 합니다.
- 서기 86년 열 살에 아버지를 잃고, 아버지의 사촌인 트라야누스(훗날 황제)가 후견인이 됩니다.
- 서기 100년 트라야누스의 조카손녀 비비아 사비나와 혼인합니다.
- 서기 117년 8월 트라야누스가 죽으면서 양자로 지명되어 즉위하고, 메소포타미아 등 새로 정복한 땅을 포기합니다. 이듬해 집정관을 지낸 원로 넷이 처형되어 원로원과의 사이가 틀어집니다.
- 서기 122년 브리타니아를 방문해 타인 강 하구에서 솔웨이 만까지 이르는 방벽 공사를 명합니다.
- 서기 125년경 로마의 판테온이 지금의 모습으로 다시 지어집니다. 하드리아누스는 처음 지은 아그리파의 이름을 정면에 그대로 새기게 했습니다.
- 서기 130년 이집트 여행 중 총애하던 젊은이 안티노우스가 나일 강에서 죽자, 그를 신으로 모시고 그 자리에 안티노오폴리스를 세웁니다.
- 서기 132년 예루살렘 자리에 아일리아 카피톨리나를 세우려 하자 시몬 바르 코스바가 반란을 일으킵니다. 반란은 135년 베타르 함락으로 진압됩니다.
- 서기 138년 2월 안토니누스(피우스)를 양자로 들여 후계자로 삼고, 7월 10일 바이아이에서 죽습니다.
가족
게임에서 이 인물로 시작할 때 함께 나오는 가족입니다. 연도는 역사 기록을 따랐고, 전하지 않는 것은 ?로 두었습니다.
| 관계 | 이름 | 생몰년 | 비고 |
|---|---|---|---|
| 아버지 | 푸블리우스 아일리우스 하드리아누스 아페르 | ? – 서기 86년 | 원로원 의원, 트라야누스의 사촌 |
| 어머니 | 도미티아 파울리나 | 생몰년 미상 | 가데스(오늘의 카디스) 출신 집안 |
| 누나 | 아일리아 도미티아 파울리나 | 서기 75년 – 서기 130년경 | |
| 매형 | 세르비아누스 | 서기 47년 – 서기 136년 | 세 번 집정관을 지낸 원로. 136년 자결을 명받음 |
| 아내 | 비비아 사비나 | ? – 서기 136년경 | 트라야누스의 조카손녀. 둘 사이에 자식은 없었습니다 |
| 양자·후계자 | 안토니누스 피우스 | 서기 86년 – 서기 161년 | 138년 양자가 되어 같은 해 즉위 |
게임에서는
서기 122년 여름, 브리타니아를 찾은 마흔여섯 살의 황제로 시작합니다. 처음부터 로마 제국 전체가 당신의 나라이지만, 즉위하자마자 메소포타미아를 버린 일과 처형된 집정관 넷을 원로원은 잊지 않았습니다. 아내 사비나와의 사이에 아이가 없고, 누이 파울리나와 매형 세르비아누스가 있습니다.
첫 사건 「바다에서 바다까지」에서 방벽을 돌로 끝까지 쌓을지, 서쪽을 뗏장으로 빨리 닫을지, 로마 마일마다 문을 내고 세금을 거둘지 고릅니다. 그 뒤 엘레우시스, 판테온, 나일 강까지 해마다 다른 속주에서 사건이 오고, 백인대장 발레리우스와 비서 수에토니우스, 소년 안티노우스가 이 삶에 들어옵니다.
갈림길은 「바르 코크바 반란이 성공했다면」입니다. 132년 반란이 일어났을 때 누구를 보내느냐가 135년 베타르의 판세를 움직입니다. 반란이 진압되면 136년의 후계 문제와 사비나의 장례, 아흔 살 매형의 일, 안토니누스를 지나 138년 바이아이에서 이야기가 끝나고, 반란이 성공하면 유대가 예루살렘에 서는 다른 세계로 이어집니다.
- 시나리오 안내 방벽의 황제
- 시대 안내 로마 제국
- 관련 갈림길 만약 바르 코크바 반란이 성공했다면?
자주 묻는 질문
하드리아누스 방벽은 왜 쌓았나요?
정복을 멈추고 국경을 지키기로 한 하드리아누스의 정책에 따라, 브리타니아 북쪽의 부족들과 로마 속주를 가르고 사람과 물건의 출입을 통제하려고 쌓았습니다. 4세기 무렵의 황제 전기집은 「로마인과 야만인을 가르기 위해」 쌓았다고 적고 있습니다.
하드리아누스 방벽은 얼마나 길고, 지금도 남아 있나요?
길이는 80로마마일, 약 117km로 동쪽 타인 강 하구에서 서쪽 솔웨이 만까지 이어졌습니다. 상당 부분이 지금도 남아 있고, 1987년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올랐으며 현재는 「로마 제국의 국경선」 유산의 일부입니다.
오현제란 누구인가요?
96년부터 180년까지 차례로 다스린 네르바, 트라야누스, 하드리아누스, 안토니누스 피우스,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다섯 황제를 가리킵니다. 하드리아누스는 그 셋째이고, 이 시기 황제들은 대체로 혈연 대신 양자를 들여 후계를 정했습니다.
참고
『황제열전(히스토리아 아우구스타)』 하드리아누스 편, 카시우스 디오 『로마사』 69권, 잉글리시 헤리티지의 하드리아누스 방벽 안내 자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