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모스테네스
데모스테네스(기원전 384년~기원전 322년)는 고대 아테네의 정치가이자 그리스에서 가장 이름난 연설가입니다. 마케도니아 왕 필리포스 2세를 경계하는 「필리포스 탄핵」 연설로 아테네와 테베의 동맹을 끌어냈지만 기원전 338년 카이로네이아에서 졌고, 알렉산드로스가 죽은 뒤의 라미아 전쟁에서도 져 칼라우레이아 섬에서 독을 마시고 죽었습니다.
| 생몰 | 기원전 384년 – 기원전 322년 |
|---|---|
| 활동한 곳 | 아테네 · 펠라 · 테베 · 칼라우레이아 |
| 알려진 일 | 「필리포스 탄핵」 연설, 반마케도니아 운동의 지도자 |
| 게임 시작 | 기원전 346년 · 38세 · 아테네 민회의 연설가(평민) — 마지막 연설 |
생애 요약
- 기원전 384년 아테네 파이아니아 구에서 칼과 침대를 만드는 공방 주인의 아들로 태어납니다.
- 기원전 376년경 일곱 살에 아버지를 여의고, 후견인들이 유산 대부분을 빼돌립니다.
- 기원전 364년 스무 살 무렵 후견인 아포보스 등을 고소해 유산 일부를 되찾으며 연설가로서 이름을 얻기 시작합니다.
- 기원전 351년 첫 번째 「필리포스 탄핵」 연설을 합니다. 기원전 349년에는 올린토스를 도우라는 연설 세 편을 했지만 이듬해 올린토스는 무너집니다.
- 기원전 346년 필리포스에게 평화를 청하는 사절단의 한 사람으로 펠라에 가고, 「필로크라테스의 평화」가 맺어집니다.
- 기원전 341년 세 번째 「필리포스 탄핵」 연설로 민회를 움직이고, 이듬해 아테네는 평화를 깹니다.
- 기원전 338년 엘라테이아가 떨어지자 테베로 가 동맹을 맺어 오지만, 8월 카이로네이아에서 연합군이 필리포스와 알렉산드로스에게 집니다. 그는 전사자들의 장례 연설을 맡습니다.
- 기원전 330년 크테시폰이 그에게 금관을 주자고 한 일을 두고 열린 「왕관 재판」에서 「왕관에 대하여」로 맞수 아이스키네스를 이깁니다.
- 기원전 324년 알렉산드로스의 재무관 하르팔로스가 가져온 돈을 받았다는 혐의로 벌금을 물고 망명합니다.
- 기원전 322년 라미아 전쟁에서 그리스 연합군이 크란논에서 진 뒤, 안티파트로스의 추격자들이 다가오자 칼라우레이아 섬 포세이돈 신전에서 독을 마십니다.
가족
게임에서 이 인물로 시작할 때 함께 나오는 가족입니다. 연도는 역사 기록을 따랐고, 전하지 않는 것은 ?로 두었습니다.
| 관계 | 이름 | 생몰년 | 비고 |
|---|---|---|---|
| 아버지 | 데모스테네스 | ? – 기원전 376년경 | 칼과 침대 공방의 주인. 아들이 일곱 살 때 죽음 |
| 어머니 | 클레오불레 | 생몰년 미상 | |
| 누이 | (이름이 전하지 않음) | 생몰년 미상 | 게임에서는 니카레테라는 이름으로 나옵니다 |
게임에서는
기원전 346년 2월, 필리포스에게 평화를 청하러 가는 아테네 사절단의 서른여덟 살 연설가로 시작합니다. 땅도 칼 솜씨도 없지만 지략과 넉넉한 금화, 민회에서 얻은 이름이 있습니다. 아직 혼인하지 않았고, 어머니와 누이가 곁에 있습니다.
이 시나리오의 갈림길은 「카이로네이아에서 그리스 연합군이 이겼다면」입니다. 펠라에서 왕의 군대를 살핀 일, 펠로폰네소스와 에우보이아와 비잔티온을 도는 외교, 삼단노선 법, 엘라테이아가 떨어진 날 테베 민회에 내준 조건이 기원전 338년의 판세를 움직입니다. 연합군이 지면 장례 연설과 테베의 잿더미, 왕관 재판, 하르팔로스의 금을 지나는 실제 역사가, 이기면 아테네의 동맹 회의와 젊은 알렉산드로스의 복수전으로 이어지는 다른 줄기가 결말까지 갑니다.
맞수 아이스키네스와의 재판은 시작부터 이어집니다. 사절길에서 모은 증거, 성벽에 보탠 돈, 카이로네이아에서 한 일이 쌓여 기원전 330년 왕관 재판의 결과를 정하고, 실제 역사의 줄기는 기원전 322년 칼라우레이아의 신전에서 끝납니다.
- 시나리오 안내 마지막 연설
- 시대 안내 고전 그리스
- 관련 갈림길 만약 카이로네이아에서 그리스 연합군이 이겼다면?
자주 묻는 질문
「필리포스 탄핵(필리피카)」이란 무엇인가요?
데모스테네스가 기원전 351년부터 341년 무렵까지 아테네 민회에서 마케도니아의 필리포스 2세를 경계하라며 한 연설들입니다. 네 편이 전하며 넷째 편은 진짜인지 논란이 있습니다. 훗날 키케로가 안토니우스를 공격한 연설도 「필리피카」라 불렸고, 지금도 서양 언어에서 격렬한 규탄 연설을 뜻하는 말로 쓰입니다.
데모스테네스는 어떻게 죽었나요?
기원전 322년 라미아 전쟁에서 그리스 연합군이 진 뒤 마케도니아의 안티파트로스가 반마케도니아 연설가들을 넘기라고 요구했습니다. 데모스테네스는 칼라우레이아 섬(오늘의 포로스)의 포세이돈 신전으로 피했다가, 추격자가 오자 붓 속에 숨겨 둔 독을 마셨다고 플루타르코스가 전합니다.
입에 조약돌을 물고 연습했다는 이야기는 사실인가요?
플루타르코스는 그가 발음이 나빠 입에 조약돌을 물고 말하거나, 바닷가에서 파도 소리를 이기며 연설을 연습하고, 지하 연습실에서 몇 달씩 지냈다고 전합니다. 사실인지 확인할 길은 없지만, 노력으로 약점을 이긴 연설가의 이야기로 널리 알려졌습니다.
참고
데모스테네스 연설집(「필리포스 탄핵」, 「왕관에 대하여」), 아이스키네스 「크테시폰 고발」, 플루타르코스 『영웅전』 데모스테네스 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