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르트랑 뒤 게클랭
베르트랑 뒤 게클랭(1320년경~1380년)은 백년전쟁 시기 프랑스의 장군으로, 1370년 프랑스 원수(콩네타블)가 되었습니다. 브르타뉴 디낭 근처의 하급 귀족 집안 출신으로 글을 읽지 못했지만, 브르타뉴 계승 전쟁의 매복전으로 이름을 얻고 1364년 코슈렐에서 이겼으며, 카스티야 내전에 대용병단을 이끌고 가 엔리케 2세의 즉위를 도왔습니다. 큰 결전을 피하는 소모전으로 잉글랜드에 빼앗긴 땅 대부분을 되찾은 것으로 유명하고, 「브로셀리앙드의 검은 개」라는 별명이 있습니다.
| 생몰 | 1320년경 – 1380년 |
|---|---|
| 활동한 곳 | 브르타뉴 · 노르망디 · 카스티야 · 랑그도크 |
| 알려진 일 | 백년전쟁의 프랑스 원수, 「브로셀리앙드의 검은 개」 |
| 게임 시작 | 1337년 · 17세 · 디낭 근처 하급 귀족의 맏아들(기사 신분) — 브로셀리앙드의 검은 개 |
생애 요약
- 1320년경 브르타뉴 디낭 근처 브롱의 작은 성에서 하급 귀족 로베르의 맏아들로 태어납니다.
- 1341년 공작 장 3세가 아들 없이 죽어 브르타뉴 계승 전쟁이 일어나고, 그는 프랑스 왕이 미는 샤를 드 블루아 편에 섭니다.
- 1354년 몽뮈랑 근처에서 잉글랜드군을 매복으로 무찌른 공으로 기사가 됩니다.
- 1357년 잉글랜드군에게 포위된 렌을 지켜 내고, 성 앞에서 잉글랜드 기사와 결투를 벌인 이야기로 이름이 높아집니다.
- 1364년 5월 코슈렐에서 나바라 왕의 군대를 무찌르지만, 9월 오레에서 블루아가 전사하고 그는 사로잡혔다가 몸값을 내고 풀려납니다.
- 1366년 프랑스를 괴롭히던 대용병단을 이끌고 카스티야로 가 엔리케 데 트라스타마라를 돕습니다.
- 1367년 나헤라에서 흑태자 에드워드에게 사로잡혔다가 다시 몸값으로 풀려납니다.
- 1369년 몬티엘에서 엔리케가 형 페드로 1세를 꺾게 돕고, 엔리케는 카스티야 왕이 됩니다.
- 1370년 10월 프랑스 원수가 되고, 12월 퐁발랭에서 잉글랜드군을 무찌릅니다.
- 1380년 7월 13일 랑그도크의 샤토뇌프드랑동을 포위하던 중 병으로 죽고, 왕실 묘지인 생드니에 묻힙니다.
가족
게임에서 이 인물로 시작할 때 함께 나오는 가족입니다. 연도는 역사 기록을 따랐고, 전하지 않는 것은 ?로 두었습니다.
| 관계 | 이름 | 생몰년 | 비고 |
|---|---|---|---|
| 아버지 | 로베르 뒤 게클랭 | 생몰년 미상 | 브롱의 영주 |
| 어머니 | 잔 드 말르마인 | 생몰년 미상 | |
| 동생 | 올리비에 | 생몰년 미상 | |
| 누이 | 쥘리엔 | 생몰년 미상 | |
| 첫 아내 | 티펜 라그넬 | ? – 1373년 | 디낭 출신, 점성술과 학식으로 이름난 여인. 1363년 혼인 |
| 둘째 아내 | 잔 드 라발 | 생몰년 미상 | 1374년 혼인 |
게임에서는
1337년, 백년전쟁이 시작되던 해에 열일곱 살 소년으로 시작합니다. 어머니조차 이렇게 못생긴 아이는 처음 본다고 했고, 땅도 작위도 없으며 글도 끝내 배우지 못하지만, 몸이 단단하고 싸움에 겁이 없습니다. 어머니 잔, 동생 올리비에와 누이 쥘리엔이 있고, 훗날 디낭의 티펜 라그넬과 라발의 잔이 이 삶에 들어옵니다.
첫 사건 「렌의 마상 시합」에서 사촌의 말과 투구를 빌려 나가면 이름을 크게 얻지만 다칠 수도 있습니다. 이 삶의 무기는 무력과 병력이고, 1341년 공작이 죽으면 브르타뉴가 블루아파와 몽포르파로 갈려 렌 포위전과 오레까지 이어집니다.
갈림길은 「크레시에서 프랑스가 이겼다면」입니다. 1346년 장궁병이 이기면 라 로슈데리앙, 몽뮈랑, 렌, 코슈렐과 오레, 나헤라와 몬티엘, 원수의 지팡이와 퐁발랭을 지나 1380년 샤토뇌프드랑동까지 실제 역사가, 프랑스가 이기면 블루아의 승리와 브르타뉴의 원수, 카스티야의 두 왕으로 이어지는 다른 줄기가 결말까지 갑니다.
- 시나리오 안내 브로셀리앙드의 검은 개
- 시대 안내 중세
- 관련 갈림길 만약 크레시에서 프랑스가 이겼다면?, 만약 1429년 오를레앙이 함락되었다면?
자주 묻는 질문
베르트랑 뒤 게클랭은 왜 유명한가요?
하급 귀족 출신에 글도 읽지 못한 기사가 실력만으로 프랑스 원수에까지 올랐고, 샤를 5세와 함께 잉글랜드에 빼앗겼던 땅 대부분을 되찾았기 때문입니다. 왕족이 아닌데도 왕실 묘지인 생드니에 묻히는 영예를 얻었습니다.
뒤 게클랭은 어떻게 죽었나요?
1380년 7월 13일 랑그도크의 샤토뇌프드랑동을 포위하던 중 병(이질로 추정)으로 죽었습니다. 성의 수비대가 약속대로 그의 관 위에 성 열쇠를 바쳤다는 이야기가 전합니다.
「브로셀리앙드의 검은 개」라는 별명은 어디서 왔나요?
그가 살갗이 검고 생김새가 투박했다고 연대기들이 전하는 데다, 브르타뉴의 전설적인 숲 브로셀리앙드 일대에서 사납게 싸운 데서 붙은 별명입니다. 생김새와 달리 무훈시와 전설 속에서는 프랑스의 영웅으로 노래되었습니다.
참고
장 프루아사르 『연대기』, 퀴벨리에 『베르트랑 뒤 게클랭 무훈시』, 일반 백년전쟁사 개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