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닐로 로마노비치
다닐로 로마노비치(1201년~1264년)는 할리치-볼히니아(갈리치아-볼히니아)의 공이자, 1253년 교황이 보낸 왕관을 받아 「루스의 왕」이 된 군주입니다. 네 살에 아버지를 잃고 보야르와 헝가리·폴란드에 맞서 오랜 싸움 끝에 1238년 할리치를 되찾았으며, 몽골의 침입 뒤 1245년 사라이의 바투 칸에게 가서 봉신이 되었습니다. 홀름(오늘의 폴란드 헤움)을 도읍으로 삼았고, 아들 레프의 이름을 딴 도시 르비우를 세운 사람으로 알려져 있으며, 우크라이나에서는 다닐로 왕으로 기억됩니다.
| 생몰 | 1201년 – 1264년 |
|---|---|
| 활동한 곳 | 할리치 · 볼히니아 · 홀름 · 사라이 |
| 알려진 일 | 몽골 시대 루스의 왕, 르비우를 세운 군주 |
| 게임 시작 | 1238년 · 37세 · 할리치-볼히니아의 공(군주) — 키예프의 겨울 |
생애 요약
- 1201년 할리치-볼히니아의 공 로만 므스티슬라비치의 맏아들로 태어납니다.
- 1205년 아버지가 자비호스트에서 폴란드군과 싸우다 전사하고, 네 살의 다닐로는 보야르들에게 쫓겨 이 성 저 성을 떠돕니다.
- 1223년 칼카 강 전투에서 처음 몽골군과 싸우다 가슴에 창을 맞고 살아 돌아옵니다.
- 1238년 오랜 싸움 끝에 할리치를 되찾습니다. 같은 해 몽골군은 북동쪽의 블라디미르를 불태웁니다.
- 1240년 12월 몽골군이 다닐로가 맡긴 천인대장 드미트로가 지키던 키예프를 함락합니다.
- 1245년 야로슬라프 전투에서 헝가리·폴란드 연합군을 이기고, 그해 겨울 사라이로 가 바투 칸의 봉신이 됩니다.
- 1253년 드로히친에서 교황 인노켄티우스 4세가 보낸 왕관을 받습니다.
- 1256년경 아들 레프의 이름을 딴 도시 르비우가 연대기에 처음 나타납니다.
- 1259년 몽골 장군 부룬다이의 명령으로 여러 도시의 성벽을 허뭅니다.
- 1264년 홀름에서 죽습니다.
가족
게임에서 이 인물로 시작할 때 함께 나오는 가족입니다. 연도는 역사 기록을 따랐고, 전하지 않는 것은 ?로 두었습니다.
| 관계 | 이름 | 생몰년 | 비고 |
|---|---|---|---|
| 아버지 | 로만 므스티슬라비치 | ? – 1205년 | 할리치-볼히니아 공. 1205년 자비호스트에서 전사 |
| 어머니 | 안나 | ? – 1253년 | 로만 공의 둘째 아내 |
| 동생 | 바실코 | 1203년 – 1269년 | 볼히니아 공. 평생 형의 곁을 지킴 |
| 아내 | 안나 | ? – 1252년경 | 노브고로드 공 므스티슬라프 무다틀리(대담공)의 딸 |
| 아들 | 레프 | 1228년경 – 1301년경 | 르비우의 이름이 된 아들. 할리치 공을 이음 |
| 아들 | 로만 | 생몰년 미상 | 바벤베르크가의 게르트루트와 혼인해 오스트리아를 노림 |
| 딸 | 우스티나 | 생몰년 미상 | |
| 아들 | 슈바르노 | ? – 1269년 | 한때 리투아니아 대공 |
| 아들 | 므스티슬라프 | 생몰년 미상 | 볼히니아의 공 |
게임에서는
1238년 겨울, 할리치의 성문 앞에 선 서른일곱 살의 공으로 시작합니다. 랴잔과 블라디미르가 불탔다는 소식이 얼어붙은 강을 따라 내려오는 가운데, 열다섯 해 전 칼카 강에서 싸운 그 기병들이 돌아왔습니다. 동생 바실코, 아내 안나, 열 살 맏아들 레프와 동생들이 곁에 있고, 천인대장 드미트로와 동굴 수도원의 필라레트 수사가 이 삶에 들어옵니다.
첫 사건 「할리치의 성문」에서 주교와 보야르를 용서할지, 흐리호리를 가두고 그의 마을을 드루지나에게 나눠 줄지 고릅니다. 1245년 야로슬라프에서 이긴 뒤 사라이에서 쿠미스를 마시는 장면이 오고, 칸의 허가와 서쪽의 왕관 사이에서 어떻게 설지가 이 삶의 줄기가 됩니다.
갈림길은 「칸이 죽은 해」입니다. 1242년 대칸이 죽은 뒤 몽골군이 말머리를 돌리면 불탄 볼로디미르, 드로히친의 관, 성벽을 허물라는 명령을 지나 1264년 홀름의 겨울까지 실제 역사가, 몽골군이 도나우에 남으면 도나우의 오르다와 오지 않는 왕관으로 이어지는 다른 줄기가 결말까지 갑니다.
- 시나리오 안내 키예프의 겨울
- 시대 안내 중세
- 관련 갈림길 만약 1242년 몽골군이 헝가리에 남았다면?
자주 묻는 질문
다닐로는 왜 「왕」으로 불리나요?
1253년 드로히친에서 교황 인노켄티우스 4세가 보낸 왕관을 받아 「루스의 왕」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교황은 몽골에 맞선 십자군과 교회 통합을 기대했지만 약속한 서방의 도움은 오지 않았습니다.
다닐로는 몽골과 어떤 관계였나요?
1245년 사라이로 가서 바투 칸의 봉신이 되어 영지를 지켰습니다. 『할리치-볼히니아 연대기』는 칸 앞에서 쿠미스를 마셔야 했던 그를 두고 「타타르의 영예는 악보다 더 나쁘다」고 탄식합니다. 이후 서방과 손잡고 몽골에서 벗어나려 했지만, 1259년 부룬다이가 오자 성벽을 허물어야 했습니다.
르비우는 다닐로가 세웠나요?
다닐로가 세우고 아들 레프의 이름을 붙였다고 전합니다. 도시의 이름은 1256년 무렵 연대기 기록에 처음 나타나며, 다닐로의 도읍은 홀름이었습니다.
참고
『할리치-볼히니아 연대기』(『이파티예프 연대기』 수록), 조반니 다 피안 델 카르피네 『몽골인의 역사』, 일반 우크라이나·루스사 개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