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복왕 윌리엄
정복왕 윌리엄(1028년경~1087년)은 노르망디 공(1035~1087)이자 잉글랜드 왕(1066~1087)입니다. 1066년 10월 14일 헤이스팅스 전투에서 해럴드 2세를 꺾고 그해 성탄절 웨스트민스터에서 대관해 노르만 정복을 이루었고, 1086년 잉글랜드 전역의 토지 조사인 둠즈데이 조사를 명했습니다. 노르망디 공 로베르 1세와 팔레즈의 에를레바 사이에서 태어나 생전에는 「서자 윌리엄」으로도 불렸습니다.
| 생몰 | 1028년경 – 1087년 |
|---|---|
| 활동한 곳 | 노르망디(루앙, 캉) · 잉글랜드 |
| 알려진 일 | 1066년 노르만 정복, 헤이스팅스 전투, 둠즈데이 조사 |
| 게임 시작 | 1065년 · 37세 · 노르망디 공(군주) — 바다 건너의 왕관 |
생애 요약
- 1028년경 팔레즈에서 노르망디 공 로베르 1세와 에를레바의 아들로 태어납니다.
- 1035년 아버지가 예루살렘 순례에서 돌아오다 니케아에서 죽어, 일곱 살 무렵 노르망디 공이 됩니다. 어린 공작의 보호자들이 잇달아 살해되는 혼란이 이어집니다.
- 1047년 프랑스 왕 앙리 1세의 도움으로 발레스뒨에서 반란 제후들을 꺾습니다.
- 1051년경 플랑드르 백작의 딸 마틸다와 혼인합니다.
- 1064년경 노르만 쪽 기록에 따르면 해럴드 고드윈슨이 바이외에서 성유물에 손을 얹고 그를 돕겠다고 맹세합니다.
- 1066년 1월 해럴드가 잉글랜드 왕이 되자 바다를 건너 9월 28일 페븐지에 상륙하고, 10월 14일 헤이스팅스에서 해럴드를 꺾은 뒤 성탄절에 웨스트민스터에서 대관합니다.
- 1069년 북부의 반란을 진압하며 요크셔 일대를 초토화합니다(이듬해까지).
- 1079년 맏아들 로베르와 다투다 제르베루아에서 맞붙어 다칩니다.
- 1086년 잉글랜드 전역의 토지와 재산을 조사한 둠즈데이 조사를 마치고, 솔즈베리에서 영주들의 충성 맹세를 받습니다.
- 1087년 망트를 불태우다 다친 몸으로 9월 9일 루앙 근처에서 죽고, 캉의 생테티엔 수도원에 묻힙니다.
가족
게임에서 이 인물로 시작할 때 함께 나오는 가족입니다. 연도는 역사 기록을 따랐고, 전하지 않는 것은 ?로 두었습니다.
| 관계 | 이름 | 생몰년 | 비고 |
|---|---|---|---|
| 아버지 | 로베르 1세 | 1000년경 – 1035년 | 노르망디 공. 1035년 순례 길에 니케아에서 죽음 |
| 어머니 | 에를레바 | 1003년경 – 1050년경 | 팔레즈 무두장이의 딸. 훗날 콩트빌의 에를뤼앵과 혼인 |
| 이부동생 | 오도 | 1035년경 – 1097년 | 바이외 주교, 켄트 백작 |
| 이부동생 | 모르탱의 로베르 | 1031년경 – 1095년 | 모르탱 백작 |
| 아내 | 마틸다 | 1031년경 – 1083년 | 플랑드르 백작 보두앵 5세의 딸. 1068년 잉글랜드 왕비로 대관 |
| 아들 | 로베르 쿠르퇴즈 | 1051년경 – 1134년 | 노르망디 공을 이음 |
| 아들 | 리샤르 | 1054년경 – 1070년경 | 젊어서 뉴 포레스트의 사냥 사고로 죽음 |
| 딸 | 아델리자 | 생몰년 미상 | |
| 딸 | 세실리아 | 1056년경 – 1126년 | 캉의 생트리니테 수녀원장 |
| 아들 | 윌리엄 루퍼스 | 1057년경 – 1100년 | 잉글랜드 왕 윌리엄 2세. 1100년 사냥 중 화살에 맞아 죽음 |
| 딸 | 콩스탕스 | ? – 1090년 | 브르타뉴 공 알랭 4세와 혼인 |
게임에서는
1065년, 루앙에서 서른일곱 살의 노르망디 공으로 시작합니다. 바다 건너 잉글랜드의 늙은 왕 에드워드가 병석에 누웠고, 지난해 해럴드 고드윈슨이 성유물 위에서 맹세했습니다. 아내 마틸다와 아들 로베르, 리샤르, 윌리엄 루퍼스와 딸들, 이부동생 오도와 모르탱의 로베르가 곁에 있습니다.
갈림길은 「헤이스팅스」입니다. 첫 해의 「쫓겨난 백작」에서 토스티그에게 배를 빌려줄지, 「배의 목록」에서 제후들에게 서명을 받을지가 1066년의 판세를 움직입니다. 이기면 성탄절의 대관, 엑서터, 북부 초토화, 일리의 늪, 백작들의 반란, 솔즈베리의 맹세를 지나 1087년 망트의 불까지 실제 역사가, 지면 배로 물러난 공으로 남아 작은 공국을 지키는 다른 줄기가 결말까지 갑니다.
정복 뒤에는 저항과 함께 가족의 다툼이 기다립니다. 1077년 「레글의 물동이」 뒤로 맏아들 로베르가 아버지와 맞서고, 이부동생 오도의 일이 와이트 섬에서 기다립니다.
- 시나리오 안내 바다 건너의 왕관
- 시대 안내 바이킹과 대관의 시대
- 관련 갈림길 만약 해럴드가 헤이스팅스 전투에서 이겼다면?
자주 묻는 질문
윌리엄은 왜 「정복왕」 또는 「서자 윌리엄」이라 불리나요?
1066년 잉글랜드를 정복해 왕이 되었기 때문에 「정복왕」이라 불립니다. 아버지 로베르 1세와 정식으로 혼인하지 않은 에를레바 사이에서 태어나 생전과 당대 기록에서는 「서자 윌리엄」으로도 불렸습니다.
헤이스팅스 전투는 언제, 어디서 있었나요?
1066년 10월 14일, 잉글랜드 남동부 서식스의 헤이스팅스 북서쪽(오늘의 배틀 마을)에서 있었습니다. 하루 종일 이어진 싸움 끝에 잉글랜드 왕 해럴드 2세가 전사했고, 윌리엄은 그해 성탄절에 대관했습니다.
둠즈데이 조사란 무엇인가요?
1085년 성탄 회의에서 윌리엄이 명해 1086년에 거의 마친 잉글랜드 전역의 토지·가축·재산 조사입니다. 그 기록인 『둠즈데이 북』은 중세 유럽에서 가장 자세한 조사 기록 가운데 하나로 지금도 잉글랜드 국립기록보관소에 남아 있습니다.
참고
『앵글로색슨 연대기』, 푸아티에의 기욤 『윌리엄 공의 행적』, 바이외 태피스트리, 『둠즈데이 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