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관과 쟁기게임 시작

엔리코 단돌로

1107년경 – 1205년 · 중세 · 베네치아의 갤리선 · 고친 날

엔리코 단돌로(1107년경~1205년)는 1192년부터 1205년까지 베네치아 공화국의 도제(국가 원수)였습니다. 여든을 넘겨 도제가 되었고 눈이 거의 보이지 않았지만, 제4차 십자군의 뱃삯 문제를 이용해 1202년 자라(자다르)를, 1204년 콘스탄티노플을 함락하는 데 앞장서 베네치아를 지중해의 해상 강국으로 키웠습니다. 1205년 콘스탄티노플에서 죽어 하기아 소피아에 묻혔습니다.

생몰1107년경 – 1205년
활동한 곳베네치아 · 자라 · 콘스탄티노플
알려진 일제4차 십자군과 1204년 콘스탄티노플 함락을 이끈 도제
게임 시작1202년 · 95세 · 베네치아 공화국의 도제(군주) — 베네치아의 갤리선

생애 요약

가족

게임에서 이 인물로 시작할 때 함께 나오는 가족입니다. 연도는 역사 기록을 따랐고, 전하지 않는 것은 ?로 두었습니다.

관계이름생몰년비고
아버지비탈레 단돌로생몰년 미상공화국의 원로 정치가
아들라니에리 단돌로? – 1209년경아버지가 원정 간 동안 부도제로 베네치아를 맡음. 1209년 무렵 크레타에서 제노바 편 해적과 싸우다 죽음

게임에서는

1202년 여름, 베네치아에서 아흔다섯 살의 도제로 시작합니다. 리도 섬에는 뱃삯을 다 치르지 못한 십자군이 묶여 있고, 아르세날레는 그들을 실어 갈 배를 이미 다 지었습니다. 금화의 문양도 읽지 못하지만 장부의 숫자는 한 번 들으면 잊지 않습니다. 서른일곱 살 아들 라니에리가 곁에 있습니다.

갈림길은 「콘스탄티노플의 성벽」입니다. 자라의 성벽과 알렉시오스 황자의 사절, 1203년 뱃머리의 노인이 1204년의 판세를 움직입니다. 도시가 무너지면 사흘의 약탈과 황제 선거, 아드리아노플의 밤과 하기아 소피아를 지나 실제 역사가, 해벽이 버티면 대평의회의 장부와 돌아온 도제의 마지막 겨울로 이어지는 다른 줄기가 결말까지 갑니다.

이 시나리오는 두 세대의 이야기입니다. 1205년 하기아 소피아의 장면이 늙은 도제의 고비이고, 당신이 죽으면 이야기는 아들 라니에리에게 넘어가 크레타의 해적 백작과 칸디아의 아르콘을 상대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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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주 묻는 질문

엔리코 단돌로는 정말 눈이 멀었나요?

네. 함께 원정한 빌아르두앵 등 같은 시대 기록이 그가 눈이 보이지 않았다고 전합니다. 1172년 콘스탄티노플에서 비잔티움 황제의 명령으로 눈을 잃었다는 이야기는 후대의 전설로 보는 견해가 많고, 머리 부상이나 병으로 시력을 잃었다는 설명도 있습니다.

제4차 십자군은 왜 콘스탄티노플을 공격했나요?

이집트로 가려던 십자군이 베네치아에 뱃삯을 다 내지 못해 빚을 진 상태에서, 폐위된 황제의 아들 알렉시오스가 아버지를 복위시켜 주면 큰돈과 병력을 주겠다고 약속했기 때문입니다. 복위 뒤 약속이 지켜지지 않자 1204년 4월 도시를 함락해 약탈했습니다.

단돌로의 무덤은 어디에 있나요?

하기아 소피아에 묻혔다고 전합니다. 지금 위층 회랑에 있는 그의 이름을 새긴 표석은 19세기에 놓은 것이고, 유해가 실제로 어디 있는지는 확인되지 않았습니다.

참고

조프루아 드 빌아르두앵 『콘스탄티노플 정복기』, 니케타스 코니아테스 『연대기』, 일반 비잔티움·베네치아사 개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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