앨프레드 대왕
앨프레드 대왕(849년~899년)은 871년부터 899년까지 다스린 웨섹스의 왕입니다. 878년 데인인의 기습으로 서머싯의 늪 애셀니로 쫓겨났다가 그해 5월 에딩턴에서 구스룸의 군대를 꺾었고, 이후 버(burh)라는 요새망과 군제 개혁으로 데인인을 막아 잉글랜드 통일의 바탕을 놓았습니다. 라틴어 책을 영어로 옮기게 한 학문의 후원자로도 알려진, 잉글랜드 군주 가운데 「대왕」이라 불리는 유일한 사람입니다.
| 생몰 | 849년 – 899년 |
|---|---|
| 활동한 곳 | 웨섹스(서머싯, 윈체스터) · 런던 |
| 알려진 일 | 에딩턴 전투, 버(요새망), 잉글랜드에서 유일한 「대왕」 |
| 게임 시작 | 878년 · 29세 · 웨섹스의 왕(군주) — 애셀니의 늪 |
생애 요약
- 849년 웬티지에서 웨섹스 왕 애설울프의 막내아들로 태어납니다.
- 853년 어린 나이에 로마를 방문하고, 855년에는 아버지와 함께 다시 로마에 갑니다.
- 868년 머시아 귀족 집안의 엘스위스와 혼인합니다.
- 871년 형 애설레드 1세가 죽자 왕위에 오르고, 그해 데인인 대군과 여러 차례 싸운 끝에 화친을 맺습니다.
- 878년 1월 구스룸의 군대가 치펀햄을 기습하자 애셀니의 늪으로 피합니다. 5월 에딩턴에서 구스룸을 꺾고, 구스룸은 세례를 받으며 앨프레드가 대부가 됩니다.
- 880년경 나라 곳곳에 버(burh)라는 요새 도시를 세우고, 장정들을 두 패로 나누어 번갈아 군역을 지게 합니다.
- 886년 런던을 손에 넣고, 데인인이 다스리지 않는 모든 잉글랜드인의 왕으로 인정받습니다.
- 890년경 라틴어를 배워 「목자의 직무」 같은 책을 영어로 옮기게 하고, 이 무렵 『앵글로색슨 연대기』의 편찬이 시작됩니다.
- 892년 하스테인이 이끄는 데인 대군이 다시 건너오지만, 아들 에드워드와 사위 애설레드가 896년까지 막아 냅니다.
- 899년 10월 26일 죽어 윈체스터에 묻힙니다.
가족
게임에서 이 인물로 시작할 때 함께 나오는 가족입니다. 연도는 역사 기록을 따랐고, 전하지 않는 것은 ?로 두었습니다.
| 관계 | 이름 | 생몰년 | 비고 |
|---|---|---|---|
| 아버지 | 애설울프 | 795년경 – 858년 | 웨섹스 왕(839~858) |
| 어머니 | 오스부르 | 생몰년 미상 | 아들에게 영어 시집을 외우게 했다는 일화가 전함 |
| 누나 | 에셀스위스 | 838년경 – 888년 | 머시아 왕 버그레드의 왕비 |
| 형 | 애설레드 1세 | 847년경 – 871년 | 웨섹스 왕(865~871) |
| 조카 | 애설월드 | ? – 902년 | 애설레드 1세의 아들. 앨프레드가 죽은 뒤 왕위를 다투다 902년 전사 |
| 아내 | 엘스위스 | ? – 902년 | 머시아 귀족 집안, 868년 혼인 |
| 딸 | 에셀플레드 | 870년경 – 918년 | 훗날 「머시아의 귀부인」으로 데인인과 싸움 |
| 아들 | 에드워드(장형왕) | 874년경 – 924년 | 899년 왕위를 이음 |
| 딸 | 에셀기푸 | 생몰년 미상 | 섀프츠버리 수녀원장 |
| 딸 | 엘프스리스 | 877년경 – 929년 | 플랑드르 백작 보두앵 2세와 혼인 |
게임에서는
878년 1월, 치펀햄을 잃고 몇 사람만 데리고 애셀니의 늪에 숨은 스물아홉 살 웨섹스 왕으로 시작합니다. 왕국은 아직 당신 것이지만 왕궁은 데인인의 손에 있고, 결혼식 날부터 괴롭혀 온 배앓이가 다시 도집니다. 아내 엘스위스와 에셀플레드, 에드워드를 비롯한 아이들, 누나 에셀스위스, 조카 애설월드가 있습니다.
갈림길은 「에딩턴」입니다. 첫 장면 「애셀니의 늪」에서 늪 밖으로 나가 데인인의 짐수레를 칠지, 장정들에게 몰래 사람을 보낼지, 바다 건너로 갈 배를 알아볼지가 878년 5월의 판세를 움직입니다. 이기면 앨러의 세례, 보루의 장부, 두 패의 퓌르드, 룬덴, 하스테인과 리 강, 「목자의 직무」를 지나 899년 10월 26일까지 실제 역사가, 지면 늪의 왕으로 남아 흩어진 방패벽과 무법자 오스릭으로 이어지는 다른 줄기가 결말까지 갑니다.
887년부터는 라틴어 공부와 왕의 병이 함께 찾아옵니다. 건강이 떨어지면 가족과 휴식으로 버티며 후계를 정하는 장면까지 살아남는 것이 이 삶의 숙제입니다.
- 시나리오 안내 애셀니의 늪
- 시대 안내 바이킹과 대관의 시대
- 관련 갈림길 만약 앨프레드 대왕이 에딩턴에서 졌다면?
자주 묻는 질문
앨프레드는 왜 「대왕」이라고 불리나요?
데인인의 침입에서 마지막 앵글로색슨 왕국인 웨섹스를 지켜 냈고, 요새망과 군제, 법전, 영어 번역 사업으로 훗날 잉글랜드 왕국이 서는 바탕을 놓았기 때문입니다. 「대왕」이라는 별칭은 후대에 붙은 것으로, 잉글랜드 군주 가운데 그렇게 불리는 사람은 앨프레드뿐입니다.
케이크(빵)를 태웠다는 이야기는 사실인가요?
애셀니에 숨어 지낼 때 신분을 숨긴 채 돼지치기 집에 머물다 맡겨진 빵을 태워 그 집 아내에게 꾸중을 들었다는 이야기입니다. 같은 시대 기록에는 없고 10세기 말 무렵 성인전에 처음 나타나므로 전설로 봅니다.
에딩턴 전투는 언제, 어디서 있었나요?
878년 5월, 오늘의 잉글랜드 윌트셔 에딩턴 근처(옛 이름 에싼둔)에서 있었습니다. 앨프레드가 이기자 구스룸은 항복해 세례를 받았고, 그 뒤 맺은 조약으로 잉글랜드는 웨섹스와 데인인이 다스리는 데인로로 나뉘었습니다.
참고
아서 『앨프레드 왕의 생애』, 『앵글로색슨 연대기』 871~899년, 일반 잉글랜드 중세사 개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