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아킴 뮈라
조아킴 뮈라(1767년~1815년)는 나폴레옹의 기병 지휘관이자 프랑스 원수이며, 1808년부터 1815년까지 나폴리 왕이었습니다. 케르시의 여관집 아들로 태어나 화려한 군복과 대담한 기병 돌격으로 이름을 날렸고, 나폴레옹의 막내 누이 카롤린과 혼인했습니다. 1815년 왕국을 잃은 뒤 칼라브리아의 피초에 상륙했다가 붙잡혀 총살되었습니다.
| 생몰 | 1767년 – 1815년 |
|---|---|
| 활동한 곳 | 프랑스(케르시) · 이탈리아 · 이집트 · 나폴리 · 러시아 |
| 알려진 일 | 나폴레옹의 기병 원수, 나폴리 왕 |
| 게임 시작 | 1796년 · 29세 · 보나파르트의 부관인 기병 장교(기사 신분) — 깃털 모자의 기병 |
생애 요약
- 1767년 3월 25일 케르시의 라바스티드(오늘의 라바스티드뮈라)에서 여관 주인의 아들로 태어납니다.
- 1787년 신학교를 그만두고 기병 연대에 들어갑니다.
- 1795년 방데미에르 13일, 보나파르트의 명령으로 사블롱 진지에서 대포를 끌어와 왕당파 봉기를 진압하는 데 앞장섭니다.
- 1796년 이탈리아 원정군 사령관이 된 보나파르트의 부관이 되어 이탈리아로 갑니다.
- 1799년 7월 아부키르에서 기병 돌격으로 오스만군을 무너뜨리고, 11월 브뤼메르 쿠데타 때 생클루의 오랑주리에서 의원들을 몰아냅니다.
- 1800년 1월 보나파르트의 막내 누이 카롤린과 혼인합니다.
- 1805년 전년에 원수가 된 그는 아우스터리츠 전투에서 기병을 이끌고, 이듬해 베르크 대공이 됩니다.
- 1808년 5월 2일 마드리드 봉기를 진압하고, 8월 나폴리 왕이 됩니다.
- 1812년 러시아 원정에서 대육군의 기병을 지휘합니다.
- 1815년 오스트리아와 싸우다 5월 톨렌티노에서 져 왕국을 잃고, 10월 칼라브리아의 피초에 상륙했다가 붙잡혀 13일 총살됩니다.
가족
게임에서 이 인물로 시작할 때 함께 나오는 가족입니다. 연도는 역사 기록을 따랐고, 전하지 않는 것은 ?로 두었습니다.
| 관계 | 이름 | 생몰년 | 비고 |
|---|---|---|---|
| 아버지 | 피에르 뮈라 | 생몰년 미상 | 라바스티드의 여관 주인 |
| 어머니 | 잔 루비에르 | 생몰년 미상 | |
| 아내 | 카롤린 보나파르트 | 1782년 – 1839년 | 나폴레옹의 막내 누이, 1800년 혼인 |
| 아들 | 아킬레 | 1801년 – 1847년 | 훗날 미국 플로리다로 이주 |
| 딸 | 레티치아 | 1802년 – 1859년 | 페폴리 후작과 혼인 |
| 아들 | 뤼시앵 | 1803년 – 1878년 | 훗날 프랑스 제2제국의 상원 의원 |
| 딸 | 루이즈 | 1805년 – 1889년 | 라스포니 백작과 혼인 |
게임에서는
1796년 3월, 니스에서 스물아홉 살의 기병 장교로 시작합니다. 스물여섯 살의 보나파르트가 굶주리고 군화도 없는 이탈리아 원정군을 맡았고, 방데미에르의 밤에 대포를 끌어다 준 당신을 부관으로 데려왔습니다. 땅도 칭호도 없지만 말과 칼, 젊은 장군의 신임이 있고, 고향에서는 부모가 여관을 지킵니다. 훗날 보나파르트의 누이 카롤린이 이 삶에 들어옵니다.
첫 사건 「몬테노테에서 파리까지」에서 노획한 깃발을 안고 파리까지 쉬지 않고 달리면 명성과 함께 여단장으로 오릅니다. 1808년 나폴리의 왕관을 받으면 나폴리 왕국을 맡게 되고, 그때부터는 황제의 편지와 빈에서 온 밀사 사이에서 왕국을 지킬 길을 찾아야 합니다.
이 시나리오에는 「러시아 원정」과 「워털루」 두 갈림길의 전야가 뮈라의 장면으로 옵니다. 실제 역사에서는 아부키르, 생클루, 아우스터리츠, 아일라우, 5월 2일, 나폴리, 모스크바, 톨렌티노를 지나 1815년 피초의 성벽으로 이야기가 끝나고, 코르시카에서의 고비를 넘기면 리포나 백작으로 살아 1821년 세인트헬레나의 소식을 듣습니다. 갈림길이 바뀌면 다시 나폴리 톨레도 거리로, 카르보나리로 이어지는 다른 줄기가 열립니다.
- 시나리오 안내 깃털 모자의 기병
- 시대 안내 혁명의 시대
- 관련 갈림길 만약 1812년 나폴레옹이 러시아에서 이겼다면?, 만약 나폴레옹이 워털루에서 이겼다면?
자주 묻는 질문
뮈라는 어떻게 나폴리 왕이 되었나요?
1808년 나폴레옹이 형 조제프를 스페인 왕으로 옮기면서 비게 된 나폴리 왕위를 매제인 뮈라에게 주었습니다. 뮈라는 「조아키노 나폴레오네」라는 이름으로 다스리며 봉건제 폐지와 법전 도입 같은 개혁을 했습니다.
뮈라는 어떻게 죽었나요?
1815년 왕국을 잃고 코르시카에 숨어 있다가 10월 적은 병력으로 칼라브리아의 피초에 상륙해 왕국을 되찾으려 했지만, 곧 붙잡혀 군사 재판을 받고 10월 13일 총살되었습니다. 마지막에 「얼굴은 피하고 심장을 겨누라」고 말했다고 전해집니다.
뮈라는 왜 나폴레옹을 떠났나요?
1814년 1월 나폴레옹이 기울자 나폴리 왕국을 지키려고 오스트리아와 동맹을 맺었습니다. 그러나 1815년 백일천하 때 다시 나폴레옹 편에 서서 이탈리아 독립을 외치며 오스트리아와 싸웠고, 톨렌티노에서 져 왕국을 잃었습니다.
참고
일반 나폴레옹 전쟁사 개론, 나폴리 왕국사 개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