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키비아데스
알키비아데스(기원전 450년경~기원전 404년)는 펠로폰네소스 전쟁 시기 아테네의 장군이자 정치가입니다. 페리클레스가 맡아 기른 명문가의 아들로, 시칠리아 원정을 이끌다 신성 모독 혐의로 소환되자 스파르타로, 다시 페르시아 총독에게로 넘어갔다가 아테네로 돌아온 변신으로 유명합니다. 소크라테스의 제자이자 벗으로도 이름을 남겼습니다.
| 생몰 | 기원전 450년경 – 기원전 404년 |
|---|---|
| 활동한 곳 | 아테네 · 시칠리아 · 스파르타 · 이오니아 · 프리기아 |
| 알려진 일 | 시칠리아 원정, 세 번 편을 바꾼 아테네의 장군 |
| 게임 시작 | 기원전 415년 · 35세 · 아테네의 장군(기병 계급) — 헤르메스상의 밤 |
생애 요약
- 기원전 450년경 아테네의 에우리사키다이 집안에서 태어납니다. 어머니 데이노마케는 알크마이오니다이 가문 출신입니다.
- 기원전 447년 아버지 클레이니아스가 코로네이아 전투에서 전사하고, 어머니 쪽 친척인 페리클레스가 후견인이 됩니다.
- 기원전 432년 포테이다이아 포위전에서 다쳤을 때 소크라테스가 그를 구했다고 플라톤이 전합니다. 기원전 424년 델리온에서는 거꾸로 그가 퇴각하는 소크라테스를 지켰습니다.
- 기원전 420년 처음 장군(스트라테고스)에 뽑혀 아르고스, 만티네이아와 동맹을 맺고 니키아스의 평화를 흔듭니다.
- 기원전 416년 올림피아 제전의 전차 경주에 전차 일곱 대를 내보내 1등과 2등, 4등을 차지합니다.
- 기원전 415년 니키아스, 라마코스와 함께 시칠리아 원정의 장군이 됩니다. 출항 직전 헤르메스 기둥 훼손과 엘레우시스 비의 모독으로 고발되고, 시칠리아에서 소환되자 투리오이에서 달아납니다. 아테네는 궐석 재판으로 사형을 선고합니다.
- 기원전 413년 스파르타에 시라쿠사 지원과 아티카의 데켈레이아 요새를 권합니다. 같은 해 아테네 원정군은 시라쿠사에서 궤멸합니다.
- 기원전 411년 스파르타의 의심을 피해 페르시아 총독 티사페르네스에게 갔다가, 사모스의 아테네 함대에 장군으로 뽑힙니다. 이듬해 키지코스에서 스파르타 함대를 무찌릅니다.
- 기원전 407년 비잔티온을 되찾은 뒤 아테네로 돌아와 전권 장군이 되지만, 이듬해 부하가 노티온에서 지자 다시 쫓겨나 트라키아로 물러납니다.
- 기원전 404년 아테네가 항복한 해, 프리기아의 한 마을에서 자객들에게 죽습니다.
가족
게임에서 이 인물로 시작할 때 함께 나오는 가족입니다. 연도는 역사 기록을 따랐고, 전하지 않는 것은 ?로 두었습니다.
| 관계 | 이름 | 생몰년 | 비고 |
|---|---|---|---|
| 아버지 | 클레이니아스 | ? – 기원전 447년 | 기원전 447년 코로네이아 전투에서 전사 |
| 어머니 | 데이노마케 | 생몰년 미상 | 알크마이오니다이 가문 |
| 후견인 | 페리클레스 | 기원전 495년경 – 기원전 429년 | 어머니 쪽 친척, 아테네의 지도자 |
| 동생 | 클레이니아스 | 생몰년 미상 | |
| 아내 | 히파레테 | 생몰년 미상 | 히포니코스의 딸. 게임에서는 시작 두 해 전에 죽은 것으로 나옵니다 |
| 아들 | 알키비아데스 | 생몰년 미상 | 아버지와 같은 이름. 시작 때 어린아이 |
게임에서는
기원전 415년 초여름, 서른다섯 살의 장군으로 시작합니다. 땅은 없지만 금화와 명성, 지략이 넉넉하고, 니키아스·라마코스와 함께 삼단노선 134척의 시칠리아 원정을 이끕니다. 첫 사건은 헤르메스 기둥이 깨진 새벽의 고발이고, 이듬해 국가의 배 살라미니아호가 당신을 데리러 옵니다.
이 시나리오의 갈림길은 「시칠리아 원정이 성공했다면」입니다. 투리오이에서 사라져 스파르타로 가면 실제 역사처럼 데켈레이아와 키오스, 티사페르네스의 정원, 사모스와 키지코스, 귀환과 노티온을 지나는 길이 열리고, 재판을 미루고 원정에 남거나 무죄를 받고 돌아가면 아테네가 시라쿠사를 차지한 세계에서 카르타고와 맞서고 참주가 되라는 권유를 받는 다른 줄기로 갑니다.
스파르타의 왕비 티마이아, 사모스의 트라시불로스, 헤타이라 티만드라 같은 실존 인물이 차례로 이 삶에 들어옵니다. 실제 역사의 결말은 기원전 404년 프리기아의 밤이지만, 그날의 선택에 따라 살아남을 수도 있습니다.
- 시나리오 안내 헤르메스상의 밤
- 시대 안내 고전 그리스
- 관련 갈림길 만약 아테네의 시칠리아 원정이 성공했다면?
자주 묻는 질문
알키비아데스는 왜 스파르타로 넘어갔나요?
기원전 415년 헤르메스 기둥 훼손과 비의 모독 혐의로 시칠리아에서 소환되자, 돌아가면 사형을 받으리라 보고 이탈리아의 투리오이에서 달아났습니다. 아테네가 궐석 재판으로 사형을 선고하자 스파르타로 가서 시라쿠사에 장군을 보내고 데켈레이아에 요새를 쌓으라고 권했습니다.
알키비아데스는 어떻게 죽었나요?
기원전 404년 아테네가 항복한 뒤 프리기아의 한 마을에 머물다 습격을 받아 죽었습니다. 플루타르코스는 자객들이 집에 불을 지르고 뛰쳐나온 그를 화살과 창으로 쏘았다고 전하며, 아테네의 30인 정권과 스파르타의 리산드로스가 그 뒤에 있었다고 봅니다.
소크라테스와는 어떤 사이였나요?
소크라테스의 가장 이름난 젊은 벗이었습니다. 플라톤의 『향연』에 술에 취해 들어와 소크라테스를 칭송하는 장면이 있고, 두 사람은 포테이다이아와 델리온에서 서로를 지켰습니다. 훗날 그의 배신은 소크라테스 재판의 배경 가운데 하나로 거론됩니다.
참고
투키디데스 『펠로폰네소스 전쟁사』 6~8권, 크세노폰 『헬레니카』 1권, 플루타르코스 『영웅전』 알키비아데스 편, 플라톤 『향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