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카스 크라나흐
루카스 크라나흐(1472년경~1553년)는 독일 르네상스의 화가이자 판화가로, 1505년부터 작센 선제후의 궁정화가로 비텐베르크에서 일했습니다. 마르틴 루터의 벗으로 그와 아내 카타리나 폰 보라의 초상을 여러 번 그려 종교개혁의 얼굴을 만들었고, 큰 공방과 약국, 인쇄소를 꾸린 사업가이자 비텐베르크 시장이기도 했습니다. 같은 이름의 아들과 구분해 대(大) 크라나흐라고 부릅니다.
| 생몰 | 1472년경 – 1553년 |
|---|---|
| 활동한 곳 | 프랑켄(크로나흐) · 빈 · 작센(비텐베르크, 바이마르) |
| 알려진 일 | 작센의 궁정화가, 루터의 초상과 종교개혁의 이미지 |
| 게임 시작 | 1517년 · 45세 · 작센 선제후의 궁정화가(평민) — 비텐베르크의 인쇄공 |
생애 요약
- 1472년경 프랑켄의 크로나흐에서 화가 한스의 아들로 태어납니다. 크라나흐라는 이름은 고향 도시에서 왔습니다.
- 1502년경 빈에서 일하며 「십자가 처형」과 인문주의자들의 초상을 그립니다.
- 1505년 작센 선제후 프리드리히 현공의 궁정화가가 되어 비텐베르크로 옮깁니다. 1508년 선제후에게서 날개 달린 뱀의 문장을 받고, 이것이 공방의 서명이 됩니다.
- 1512년경 바르바라 브렝비어와 혼인합니다.
- 1520년 수도사 루터의 초상 동판화를 새기고, 같은 해 비텐베르크의 약국 영업권을 얻습니다.
- 1522년 바르트부르크에서 돌아온 루터의 독일어 신약(「9월 성경」)에 요한계시록 목판화를 넣습니다.
- 1525년 6월 13일 루터와 카타리나 폰 보라의 혼인에 증인으로 섭니다.
- 1537년 비텐베르크 시장이 됩니다. 같은 해 화가였던 아들 한스가 볼로냐에서 죽습니다.
- 1550년 뮐베르크 전투 뒤 황제의 포로가 된 선제후 요한 프리드리히를 따라 아우크스부르크로 갑니다.
- 1553년 10월 16일 바이마르에서 죽습니다.
가족
게임에서 이 인물로 시작할 때 함께 나오는 가족입니다. 연도는 역사 기록을 따랐고, 전하지 않는 것은 ?로 두었습니다.
| 관계 | 이름 | 생몰년 | 비고 |
|---|---|---|---|
| 아버지 | 한스 | 생몰년 미상 | 크로나흐의 화가 |
| 아내 | 바르바라 브렝비어 | ? – 1541년 | 고타 출신. 공방의 살림과 장부를 맡음 |
| 아들 | 한스 | 1513년경 – 1537년 | 화가. 1537년 볼로냐에서 죽음 |
| 아들 | 루카스 | 1515년 – 1586년 | 「소(小) 크라나흐」. 아버지의 공방을 이음 |
| 딸 | 우르줄라 | 생몰년 미상 | |
| 딸 | 바르바라 | 생몰년 미상 |
게임에서는
1517년 가을, 비텐베르크에서 마흔다섯 살의 궁정화가로 시작합니다. 땅도 칼도 없는 평민이지만 날개 달린 뱀의 문장, 시장 광장 모퉁이의 큰 집, 견습생 열 명이 일하는 공방이 있습니다. 아내 바르바라가 장부를 보고, 아들 한스와 루카스, 딸들이 있습니다. 대학의 수도사 루터 박사가 면벌부에 관한 논제를 내걸었다는 이야기가 돕니다.
첫 사건 「성 교회 문의 종이」에서 인쇄 직인 미하엘을 들여 판을 짜게 할지, 루터를 먼저 찾아갈지, 선제후의 제단화를 먼저 끝낼지 고릅니다. 1520년 「두 개의 얼굴」처럼 루터를 어떻게 그릴지 고르는 장면이 이어지고, 이 삶에서는 붓과 인쇄기가 무기입니다.
갈림길은 「보름스의 수도사」입니다. 루터가 살아남으면 융커 외르크, 9월 성경, 청어 통, 6월 13일 저녁의 혼인, 시장의 의자를 지나 포로가 된 선제후를 따라가는 실제 역사가, 루터가 보름스에서 화형당하면 스승 없는 봄과 트렌토로 가는 그림으로 이어지는 다른 줄기가 결말까지 갑니다.
- 시나리오 안내 비텐베르크의 인쇄공
- 시대 안내 르네상스와 대항해
- 관련 갈림길 만약 루터가 보름스에서 화형당했다면?
자주 묻는 질문
크라나흐와 루터는 어떤 사이였나요?
같은 도시 비텐베르크에 살던 가까운 벗이었습니다. 크라나흐는 루터의 초상을 수도사, 융커 외르크, 교수의 모습으로 거듭 그렸고, 1525년 루터의 혼인 증인이 되었으며 루터의 맏아들의 대부이기도 했습니다. 그의 공방은 루터의 독일어 성경에 들어간 목판화를 만들고 개혁 소책자를 찍었습니다.
크라나흐의 대표작은 무엇인가요?
루터와 카타리나 폰 보라의 초상, 「아담과 하와」, 여러 점의 「비너스」와 「루크레티아」, 「청춘의 샘」(1546), 아들이 완성한 바이마르 성 베드로·바울 교회의 제단화 등이 널리 알려져 있습니다.
대 크라나흐와 소 크라나흐는 어떻게 다른가요?
대 크라나흐(1472년경~1553년)가 이 페이지의 인물이고, 소 크라나흐(1515~1586년)는 그의 둘째 아들로 아버지의 공방을 이어받았습니다. 두 사람 모두 날개 달린 뱀 서명을 써서 작품의 주인을 가리기 어려운 경우가 많습니다.
참고
일반 독일 미술사 개론과 종교개혁사 개론, 크라나흐 연구 디지털 아카이브(Cranach Digital Archive) 같은 미술관 공개 자료.